Prologue AboutBach Work ListenToBach Reference FAQ Board

 'BWV'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노트' 중 미뉴에트 G장조
 'BWV Anh.'  '바흐 전집에 대하여'
 '바흐 칸타타 전곡이라...'  '영화음악에 사용된 바흐음악들'
 바흐의 추천 음악들  21세기 바흐해석 방향에 대한 단견(短見)하나
 무반주 플룻 파르티타(BWV1013)에대하여  바흐 샤콘느 음반!
 [설니홍조]를 일깨우는 음악, 푸가의 예술(BWV1080)  가을에 듣는 명곡 [골드베르그 변주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BWV1007~1012)  호르쇼브스키의 평균율 제1권(BWV846~869)연주
 발햐의 바흐 쳄발로 레코딩  

[발햐의 바흐 쳄발로 레코딩]

*** 게시판에 올라왔던 BACH2138님의 글입니다. ***

-진중한 암머 쳄발로에 담긴 심오한 예술-

[Ⅰ.발햐의 바흐]

[Ⅱ.주요 쳄발로 레코딩]

1.파르티타/ TOCE

2.골드베르그 변주곡/ TOCE

3.영국 모음곡/ TOCE

4.2성.3성 인벤션/ TOCE

5.프랑스 모음곡/ TOCE

6.평균율 제1.2권/ TOCE

7.프랑스 풍의 서곡/ 이탈리안 협주곡/ 반음계적 환상곡/ TOCE

8.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BWV1014~1019)/ 필립스


Ⅰ.발햐의 바흐


헬무트 발햐(Helmut Walcha/ 1907.10.27~1991.8.11)처럼 육체적 제약을 딛고 훌륭한 음악을 일구어낸 사람들이 더러 있다. 같은 맹인으로 스페인의 로드리고 같은 작곡가도 그중에 한 예일 것이다. 베토벤도 청력상실이라는 최대의 위기를 내면적 세계의 확장이라는 고차원의 경지로 승화시켜 결국에는 최고의 예술을 창출한 것이다. 헬무트 발햐라는 바흐음악의 거목도 앞에 거론한 두명의 음악가와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발햐를 보면 놀라게 되는 것이 두가지 있는데, 첫째로 암머 쳄발로라는 비교적 울림이 큰 개량쳄발로를 다루는 그의 귀신같은 솜씨이다. 그의 손놀림은 섬뜩할 정도로 전율적이라 할 것 이다. 두번째로 글쓴이를 놀라게 한 것은 그가 바흐음악에 부여한 진중하고 숭고한 음악관념이다. 이런 숭고성이란 관념은 바흐해석의 한 축을 이루는 것으로 너무도 중요한 것임은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이들 두가지의 놀라운 내.외적 사실은 모두 그가 맹인이라는 점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먼저 그가 암머 쳄발로를 다루는 미세한 터치는 분명코 그가 앞을 못본 장님이란 점에서 비롯된다고 생각된다. 일전에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어떤 맹인 집에 볼일이 있어 갔는데, 두눈 멀쩡한 나보다 그 맹인이 바늘에 실을 더 잘 꿰더라!”.........이 말은 손끝. 발끝. 미세한 풍향에 대한 촉각. 후각등의 지각 능력에 있어서 맹인은 정상인보다 훨씬 더 예민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리라! 발햐의 민감하고 정교한 터치도 시각(視覺)이 빼앗긴데 대한 보상으로 주어졌던 것이라 생각된다. 그리고 그의 음악에서 느껴지는 소박하고 진중한 맛도 역시 맹인이라는 내면적 이유에서 기인하는 바가 클 것이다. 정상인과는 달리 눈으로 보지 못한다는 것은 발햐를 더욱 내면의 세계를 탐구하는 동인 역할을 하게 했을 것이다. 이런 내면 세계에 대한 탐구는 그를 항상 동경심 많은 어린 아이처럼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의 음악에서 표출되는 순수함은 베토벤과는 방향은 다르지만 또다른 방식의 내면적 정화일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순수성이 바흐음악 자체의 숭고성과 맞닿아 그 결과물로 탄생한 것이 발햐의 음악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그의 육체적 제약이 다른 음악가들과 공동작업으로 하는 실내악이나 협주곡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실내악에서는 그나마 바흐의 또다른 거장인 헨릭셰링과 듀엣으로 레코딩한 바이올린 소나타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쳄발로 협주곡의 경우엔 눈을 씻고 봐도 음반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휘자의 지휘를 보지 못하는 육신의 한계에서 기인 했던 모양이다. 일생동안 자신의 한계를 넘어 그가 사력을 다하여 남긴 쳄발로 연주로는 프랑스 모음곡, 영국 모음곡, 파르티타곡집, 골드베르크 변주곡, 2성.3성 인벤션곡집, 평균율 제1.제2권, 이탈리아 협주곡등이 있다. 이들 레코딩들은 하나같이 발햐의 인간적인 체취가 짙게 뭍혀져 나오는 불멸의 노작들이다. 바흐 애호가들이라면 반드시 들어보아야 할 음반이라 할 것이다. 들어보지는 못했으나 70년대 초에 아르히브에서 평균율 클라비어 곡집만을 원전 쳄발로로 녹음한 음반도 존재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발햐의 음반을 감상할 때에는 주의할 것이 하나있다. 그것은 음향상의 문제이기도 한데, 원전 연주와는 달리 음향 레벨을 2~5정도 낮게 설정해 놓고 감상하기를 권하고 싶다. 자주 터져 나오는 오르간 소리같은 둔중한 울림은 섬세한 쳄발로곡과는 너무나 맞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악기자체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발햐도 어쩔수 없는 것이다. 란도프스카를 곤혹스럽게 한 저 개량쳄발로의 별로 안좋은 음조의 연장이라고 보면 될것 이다. 발햐를 포함하여 개량쳄발로 연주는 음색의 메리트를 앞세운 원전연주가 많은 요즘에는 더욱 악기의 단점이 부각되어서 초절한 영감을 지녔던 과거 쳄발리스트들의 음악을 듣지 못하게 가로막는 진입장벽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발햐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은 분들은 아래 주소로 들어가 보세요! 잘 기술해 놓았습니다.)

주소: http://my.dreamwiz.com/fischer/musicK.htm


Ⅱ.글쓴이가 들어본 주요 쳄발로 레코딩


1.파르티타/ TOCE


파르티타란 모음곡 형식의 실내 소나타를 지칭하는 것으로 당시의 관례에 따라 표준적 춤곡을 연속적으로 배치하여 사용한다. 영국 모음곡이나 프랑스 모음곡에 비하여 그 음악적 비중이 다소 낫지만, 글쓴이는 파르티타의 아름다움이 위의 두 모음곡을 능가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무곡 이외의 곡을 자유로이 배치하여 모음곡의 묘미를 한껏 드높이고 있으며, 음악자체가 표출하는 서정적이고 상쾌한 정감은 파르티타 곡집(BWV825~830)을 “이태리 모음곡”이라는 별칭을 부여하는 근거가 될 것이다. 이런 점에서 파르티타곡집은 투명한 바로크 음악의 진수라고 할 것 이다. 발햐는 오르가니스트.쳄발리스트로서도 상당히 많은 레코딩을 남겼는데, 하나같이 하늘이 빚은 작품처럼 섬세하게 연주되어 있다. 태산이 무너지는 듯 감동을 전하는 그의 위대한 오르간 연주는 말할 것도 없고, 쳄발로 연주에 있어서도 발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출함에 있어서 순수성과 단순성을 염두에 두고 밀고 나간다. 이것이 바흐의 숭고성을 표현하는데 최상이라는 믿음을 깔고 음악을 전개해 나간다는 것 같다. 그의 연주가 질박하고 소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러한 음악적 단순화가 큰 역할을 했으리라! 파르티타가 함축하는 신선한 느낌과 깊은 정신성은 발햐의 단순성과 너무나 절묘하게 어울린다. 샘물같은 명정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파르티타 제1번은 발햐의 중후함과 다소 어울릴 것 같지 않지만, 무소유의 관념을 그의 연주에서 느낄수 있는데, 이것은 맑은 영혼의 속삭임 같다. 우울한 느낌이 드는 파르티타 제2번에서 발햐는 악구를 그렇게 과장하지 않고 은은한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으며 초인적인 정신력이 느껴진다. 비교적 소박한 맛을 전달하는 파르티타 제3번은 발햐와 가장 궁합이 맞는 것 같다. 추호의 흔들림없는 고고함이 이 3번에 고스란히 녹여져있다. 낙천적이고 호방한 정서를 담고 있는 파르티타 제4번에서는 유유자적한 맛이 느껴진다. 그리고 활달함을 담고 있는 파르티타 제5번은 발햐는 항의적인 정서보다는 순능하는 뉘앙스를 깔고 악상을 전개해 나아간다. 마지막으로 비탄의 느낌이 드는 파르티타 제6번은 비애라기보다는 다소 평온을 지향하는 푸근한 느낌을 전달한다. 이 음반은 반세기 가까이 시간이 지난 연주이지만, 발햐의 미세한 터치가 고스란히 승화되어 있는 곡으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위대한 연주와 더불어 파르티타라는 악곡의 이면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최고의 음반중에 하나임을 글쓴이는 믿고싶다.


2.골드베르그 변주곡/ TOCE


발햐의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988)연주를 듣노라면 어쩌면 그리도 순수할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개량 쳄발로 치고는 음색도 깔끔하고 음악을 풀어가는 모습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낭만성을 기반으로 하여 곡에 숭고성을 부여하는 해석을 한 발햐는 바흐음악에서 그 위상은 대단하다. 그가 연주하는 암머 쳄발로는 개량쳄발로일지라도 다른 쳄발로와는 달리 음색이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개량 쳄발로 특유의 울림이 크고 쟁쟁거리는 악기와는 완전 다르다. 그가 남긴 다른 곡 연주도 그러하겠지만, 그의 연주가 가식이 없고 싫증이 잘 나지않는 이유는 내적인 직관적 통찰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본다. 이러한 통찰력은 아마도 맹인이라는 특이한 내적 상황에 기인할 것이다. 시각의 세계에서 단절된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일반인이 다다르기 어려운, 내적인 직관의 영역을 꿰뚫는 고차원의 경지를 터득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원전연주와 달리 볼륨 레벨을 약간 낮게 설정하고서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 세상 어떤 이의 연주보다도 심도높고 무기교의 직관적인 발햐의 음악을 느낄수 있다. 어떠한 아름다운 쳄발로의 음색도 발햐에 다다르면 무색해진다. 그가 불어넣은 초인적인 내적 성찰감과 무색 투명성은 바흐음악의 독실한 성격과 매치되어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반복연주를 하면서도 선율의 다변화를 꾀하려는 장식음과 같은 외형적 기교를 철저히 배제하고 뚜벅뚜벅 곡을 밀고 나가는 모습이 매우 후박하게 느껴진다. 이점은 현대 쳄발리스트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지루하리라 생각하고 외면적인 기교를 남발하다 보면 곡의 형평성이 깨어져서 음악이 듣기 거북해지고 곡의 무게가 떨어진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발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연주는 과거 애호가들의 필청 음반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요컨대, 젊은 애호가들의 감상곡 목록에도 반드시 기재되어야 할 쳄발로 곡의 최고의 명곡임을 필자는 확신한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연주와는 어떤 식으로든 자웅을 겨룰만한 연주라고 생각된다. 길이 길이 남을 명반으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저의 글“이가을의 명곡 골드베르그 변주곡”에서)


3.영국 모음곡/ TOCE


영국 모음곡(BWV806~811)이라는 지칭은 프랑스 모음곡과 비교하여 꽤 흥미를 자아내게 한다. 들어 보면 알겠지만, 이 곡집이 그 이름처럼 영국음악의 특성을 부각시킨 것은 결코 아닐 것 이다. 다만 "영국모음곡"은 "프랑스 모음곡"보다 비교적 규모가 크고 힘이 있으며 남성적인 느낌을 지니고 있다. 각 모음곡의 조성은 A장조ㅡa단조ㅡg단조ㅡF장조ㅡe단조ㅡd단조로서 음계를 하강하는 순서를 따르고 있으며, 기본 무곡에 미뉴엣.가보트.부레.루르(프랑스유래/ 우아함/ 모데라토 빠르기).폴로네에즈.파스피에(3/8박자/ 명랑/ 활발). 에어(춤곡아님)등의 임의의 춤곡들이 삽입되어있다. 또한 각 모음곡의 제1곡으로 프렐류드가 배치되어있는 것이 영국 모음곡의 외형상 특색이라고 할 수 있으며, 내용적으로도 각곡에서 이 전주곡은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영국모음곡은 전시대의 작품들과 비교해보면 프렐류드가 이례적으로 규모가 크고 곡에서의 위상도 높다고 생각한다. 글쓴이는 개인적으로 발햐를 무척 좋아하는데, 이 영국 모음곡 레코딩은 발햐의 연주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 중의 하나이며 원전연주를 포함시켜 판단해보아도 발햐를 능가하는 연주는 없다고 생각한다. 암머 쳄발로를 사용한 그의 음색은 개량쳄발로 치고는 듣기에 별 무리가 없을성 싶다. 다만 개량 쳄발로인 태생적 한계는 존재하고 있어서, 간간히 등장하는 오르간 같은 울림이 큰 음색은 쳄발로의 음조와는 상극으로 작용하곤 한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영국 모음곡 자체의 중후한 성격과 발햐의 초절한 기예가 잘 맞아 떨어져 무한한 감동을 준다. 이율배반적이지만 암머 쳄발로의 진중한 음색도 한몫한다. 그의 바흐음악에 대한 위업은 내적 영감의 외적인 실현이라고 평가하고 싶을 정도로 두텁고 독실한 맛을 가슴에 담아낼줄 안다. 오르간이던 쳄발로이던 그가 빚어내는 음악들에서는 좀처럼 실패한 연주를 발견하기 어렵다. 발햐는 현재의 젊은 연주자들이 오류를 범하는 바흐에의 접근 방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하게끔하는 몇 안되는 음악가 일 것 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제3번 연주를 들어보면 마치 빌헬름 켐프의 피아노 연주를 그대로 쳄발로로 재현 한 느낌을 준다. 전체적으로 애상적이지만 또한 평온함과 명상적인 느낌을 주는 이곡을 너무나 가슴에 와 닿게 연주하고 있다. 암머 쳄발로의 중후하고 명정한 울림으로 부드럽게 채색되어져 있다. 발햐는 장식음과 기교적인 접근이 아니라 심화된 내적 통찰을 통한 음악의 구체화가 어떤 것인가를 몸소 실천하는 연주자로 경외할 만한 사람인 것 같다. 오래 반복해서 바흐를 듣다 보면 음악의 선명화에 비례하여 그 결점도 커지는 법이기도 한데, 발햐에 이르면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될 것 같다. 워낙 간결하고 가식이 없는 연주이어서 그 음악적 감명은 오래도록 지속된다.


4.2성.3성 인벤션/ TOCE


모두 30곡(BWV772~801)으로 구성되어있는 이 작품중에서 2성에 의한 15곡을 "인벤션"이라 하고, 3성으로 된 15곡의 인벤션을 특히 "신포니아(Sinfonia)"라고 부르는데, 30곡을 통틀어 "인벤션"으로 통칭한다. 2성 인벤션은 엄격한 2성부의 대위법적 기법과 모방법으로 일관할 뿐만 아니라 단순 명쾌한 아름다움과 정밀한 구성에 더할수 없는 음악의 묘미를 보여 주고 있다. 신포니아는 여러개의 성부로 된 악곡이라는 형식적인 의미를 지니는데, 대다수가 푸가의 작법을 견지하고 있다. 바흐는 이 곡집에서 독창적인 형식과 다양한 음조로 자연스럽고 잔잔한 감동을 가져오는 격조높은 예술성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가 의도한 교육적 목적을 초월하여 바로크 음악의 소박 담백한 맛을 느낄수 있다. 이 곡집에 도전한 쳄발리스트는 그다지 많은 것 같지는 않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발햐가 연주하는 인벤션은 쳄발로연주에서는 독보적인 존재라고 생각한다. 평균율곡집과 마찬가지로 인벤션곡집도 무색투명한 느낌과 연습곡적인 성격 때문에 연주상 2가지의 위험이 상존한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연주를 통해 곡이 너무 상투적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는 점이며, 둘은 정반대로 곡에 대한 과도한 감정 이입이 자칫 곡을 천박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발햐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직시한듯 이 곡집을 상투적으로 처리하지도 않고 지나친 감정이입에 얽매이지도 않은 중용의 자세로 연주하고 있는 것 같다. 최고의 대가답게 이 무심한 듯한 곡들을 소탈한 자신만의 색채로 무한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맹인 연주가답게 암보를 바탕으로, 곡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과 내적 영감의 음악에의 투영이 인벤션 연주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어 있다. 좀처럼 실패한 연주를 남기지 않는 그의 연주상의 불세출의 능력은 결코 우연에서 오는 것이 아님을 실감 할수 있을 것 이다. 요즘말로 발햐의 내공은 어떤 이보다도 초절하다고 생각한다.


5.프랑스 모음곡/ TOCE


프랑스 스타일의 모음곡은 확립된 장르가 아니라, 많은 경우에 있어서 독일의 음악전통에 각색되어 온 것이었다. 여기서 "프랑스 스타일"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문제되지만, 프랑스 스타일이라는 것도 영국 모음곡이 그렇듯 역시 이곡의 내용을 특징지우는 음악적 요소로는 작용하지 않는 것 같다. 다만 "프랑스 모음곡(BWV812~817)"의 외형적 특징은 규모가 적고 상대적으로 화성적이며 단순한 멜로디라인을 가진다는 점, 색조적인 분위기등 일 것이다. 피아노로 이곡을 해석한 음악으로 글렌굴드의 해석이 아주 독특한데, 이 모음곡에 대한 쳄발로의 연주는 또다른 아름다움을 전한다. 쳄발로 연주로는 현재 낭만적 아름다움을 발산시키는 레온하르트의 연주, 바로크의 소탈한 면을 부각시키는 호그우드의 연주등이 주로 거론되는데, 발햐의 이곡에 대한 위치는 어떠한가? 역시 여기서도 발햐는 절제의 묘미를 살려서 음악의 품격을 고도로 승화시킨 해석을 들려준다. 발햐의 해석은 영국 모음곡에서와 같이 이 곡연주반 가운데 쳄발로 버젼으로서는 최고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 아련한 느낌이 드는 아기자기한 이 곡집에 대한 발햐의 접근은 정말 표준처럼 생각된다. 조금만 낭만화시켜 버리면 곡이 부담스러워져서 감상하기에 불편해지고 반대로 약간만 소박하게 연주하면 음악이 무미건조하여 메말라진다는 위험성을 품고 있는 음악이 바로 바흐라고 생각되는데, 특히 그중에서도 프랑스 모음곡은 더욱 그러하다고 느껴진다. 이점이 연주시 해석을 어렵게하는 요소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발햐는 이러한 모순적인 어려움을 극히 중도적인 시각에서 잘 처리해내고 있다. 극도로 단순화시킨 연주가 있는가하면 적극적인 장식음의 운용으로 곡에 생동감을 주려는 시도도 곳곳에서 발견된다. 다만 그런 가운데서 역시 큰 줄기는 놓치지 않고 있다. 그것은 그의 연주속에 녹여져 있는 순수성에 대한 무한한 동경 때문일 것이다. 전 6곡 모두 훌륭하여서 하나를 고르기도 어려운데, 비교적 규모가 큰 제6번을 한번 들어보면 전주곡의 순박하고 경쾌한 움직임이 아름다움을 전하고 있으며, 알레망드의 경묘한 울림은 가슴을 뚫고 들어오는 듯하다. 사라방드의 풍부한 울림은 심오하기 그지없다. 어떤 연주이든지 그의 연주에서 우러져 나오는 순수성은 자신의 음악이 모호해지거나 통속적으로 흐르는데 대한 견제장치로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그의 음악속에서 발현되는 소박성과 내면적인 강인한 정신성은 바흐음악의 독실함과 어우러져 그 찬란함을 더한다. 우리를 바로크의 아련한 시간속으로 인도해주는 그런 음악이 바로 발햐인 것이다.


6.평균율 제1.2권/ TOCE


평균율(제1권/ BWV846~869, 제2권/ BWV870~893)연주 레코딩을 보면 쳄발로와 피아노 양편에서 어느 정도 상당한 레코딩이 행해져 있음을 알수있는데, 크게는 쳄발로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해석과 피아노의 풍부한 감정을 앞세운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해석으로 양분될 것이다. 쳄발로의 경우 득도의 경지를 표현한 레온하르트의 연주는 여지껏 명실상부한 권위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의 비교적 젊은 연주자들은 차랑차랑하고 풍부한 울림의 메리트를 앞세워 이곡에 도전하기도 한다. 하지만 글쓴이의 좁은 생각으로는 과거세대의 명인들에 비해 그렇게 성공적인 연주업적을 이룬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본다. 물론 이점은 피아노 연주영역에 이르러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음악을 집중해서 듣고 감상 횟수를 점차 증가시켜가는 과정에서 감상자가 괴롭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곡의 해석에 대한 단점이 약간씩 감지되다가 나중에는 그 단점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특히 피아노분야에서 호르쇼브스키나 켐프의 연주는 곡의 외향적인 화려함보다는 정신적 측면을 강조하여 곡의 엄정성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해석의 이정표를 세우는 것을 볼수 있는데, 쳄발로에 이르면 레온하르트와 더불어 발햐가 그런 범주에 들 것이다. 다 같이 숭고미를 극도로 발현시키지만 레온하르트의 경우는 발햐보다는 감정 표출이 좀더 적극적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이런 면은 다른 음반에서도 느껴지는 현상이기도 한데, 평균율처럼 비교적 투명한 음악에서도 레온하르트는 삶의 관조감을 자신의 음악으로 체화하여 들려 주려한다. 이점이 발햐와 차이가 나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발햐의 경우는 결코 자신의 삶을 음악에 억지로 주입시켜 들려주려고 하지 않는다. 음악에 내면적 관념을 싣더라도 결코 구체적으로 들어 내는 법이 없다. 은근히 그저 물흐르듯이 그냥 지나가게하는 그런 음악을 들려준다. 그의 음악에 담겨있는 고결한 정신성과 순수한 아름다움이 결코 인위적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점에 연유할 것이다.(참고로 아직 제1권은 못들어 봤음)


7.프랑스 풍의 서곡을 갖는 파르티타/ 이탈리안 협주곡/ 반음계적 환상곡/ TOCE


이탈리아 협주곡(BWV971)은 협주곡이라는 명칭을 사용하고 있지만, 오케스트라의 도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순전히 독주 건반악기로 연주되는 참신한 발상이 두드러지는 곡이다. 빠름, 느림, 빠름의 협주곡 원리를 사용하고 있다. 바흐의 다른 협주곡(예컨대 그의 바이올린협주곡들)을 생각해보면 이 악곡이 독주곡이지만 협주곡의 정신이 담겨 있음을 알 수 있다. 반음계적 환상곡 d단조(BWV903)는 쇼팽을 연상시키는 대담한 선율전개가 인상적으로 느껴지는 곡으로 기교적인 아름다움을 전한다. 그 명칭처럼 자유로운 환상곡풍의 전반부와 엄정한 푸가가 건축적으로 짜여져 있다. 바흐곡 중에서 낭만적 정신이 충만한 작품중에 하나일 것이다. 프랑스 풍의 서곡을 갖는 파르티타곡(BWV831)은 표준적인 형태의 파르티타와 달리 자유로운 곡의 배치가 더욱 다채롭다. 구체적으로 보면, 알레망드가 생략되어 있으며 말미에 역동적인 에코(표현 그대로 메아리라는 말임)를 넣어 곡을 마무리하고 있다. 이곡은 기악적인 면을 더욱 내실화 한 듯 하다. 선율미와 역동적인 리듬감이 돋보이는 매력적인 곡이다. 다만, 곡의 전체 분위기는 6개의 파르티타에 대한 연장선에 있다고 보여진다. 이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곡을 제7번 파르티타라고도 불리기도 한다. 이탈리아 협주곡에 대한 발햐의 해석은 다른 음악처럼 소탈함을 전하고 있다. 제1악장의 장난스럽고 리드미컬한 맛 대신 담담히 물결치듯이 사색적인 음악을 전개시켜나간다. 제2악장의 느린 악장이야말로 그의 진면목이 느껴지는데, 명정한 암머 쳄발로의 섬세하고 절제된 울림이 가슴깊이 다가온다. 활기찬 제3악장에서도 비교적 안정성을 강조하는 선율을 들려주고 있다. 질풍같은 도전정신이 느껴지는 반음계적인 환상곡에 대한 해석으로는 쳄발로가 부서질 것 같은 피에르 앙타이의 연주가 원전연주중에는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데, 발햐는 숭고미를 중시하는 해석을 한 듯 음악이 매우 무겁게 느껴진다. 마지막곡인 프랑스풍의 서곡을 갖는 파르티타곡의 연주는 이 음반에서도 백미라고 생각된다. 크리스토퍼 루쎄의 신선한 연주와 더불어 쳄발로연주로는 최고로 훌륭한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발햐의 연주는 서정성이 강하게 표출하는 고품격의 해석을 들려주는데, 억눌린 감정이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은 마음의 상태를 평정심으로 극복하는 과정을 표현한 한편의 시같다. 심각한 느낌이 드는 제1곡에서는 세밀한 터치로 심적 동요를 잘 표현하고 있으며, 파도를 타듯 점차 심화되는 각 곡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전개시켜 나간다. 발햐의 해석은 곡의 리드믹컬한 움직임과 비교적 잘 조화되어 있다.


8.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BWV1014~1019)/ 필립스


바이올린과 쳄발로를 위한 소나타(BWV1014~1019)라고 불리는 이곡은 쳄발로를 통주저음 악기로 삼고 바이올린을 전개해 나가는 것으로 바흐의 음악가운데서도 아름다운악곡에 속한다. 삶의 아련한 비애미를 느낄 수 있는 곡들이 많은데, 바이올린이 주도해나가는 선율미가 훌륭하다할 것이다. 이전 세대보다는 쳄발로의 위상을 강화하여 균형감을 추구하려 했지만, 여전히 바이올린의 울림이 곡 전반을 감싸고 있다. 이 음반은 정식으로 전곡을 듣지 못하여 평가하기가 좀 뭐한데, 글쓴이가 한 악장을 들어본 바로는 바이올린의 음색과 쳄발로가 용호상박하는 느낌을 받았다. 이들 둘이 누구인가! 한명은 바흐 바이올린의 대가 헨릭셰링이고 한명은 바로 발햐인것이다. 이런 듀엣곡의 경우는 상대 파트너의 위상에 눌려 균형감을 상실하는 것을 허다하게 볼수있는데, 여기서는 전혀 그런 면을 볼수가 없다. 그 이유는 두 명인들의 음악적 위치가 너무나 높고 대등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이올린이 빛을 발할 때는 쳄발로가 뒤로 물러섰다가 다시 쳄발로가 그 위용을 뽐낼때는 적극적으로 나아간다. 전체적으로 악기의 대비감에서 나오는 통일감은 어느 듀엣보다도 탁월하다할 것이다. 치열한 다툼속에서 형성된 이상적인 균형감이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맹인으로서 다소 힘이 들었을텐데 셰링과 호흡을 맞춘 음반으로 남다른 감회를 주는 곡이라 할 것이다. 다른 쳄발로 협주곡 연주가 없는 것을 보면 발햐에게 맹인으로 살게끔한 하늘이 그저 무심할 따름이다.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