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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햐의 바흐 쳄발로 레코딩  

[호르쇼브스키(Horszowski)의 평균율 제1권(BWV846~869)연주]

*** 게시판에 올라왔던 BACH2138님의 글입니다. ***

-평정심을 향한 구도자의 시같은 너무나 평균적인 연주-

Ⅰ.들어가며

음악을 접하면 느끼게 되는것 중에 하나가 연주자의 삶과 그 연주자의 손끝에서 빚어지는 선율이 일정한 관련을 가진다는 것이다. 연주자의 삶을 통하여 그의 음악의 흐름을 읽을수도 있고 혹은 반대로 그 음악을 통하여서 그의 인격과 품성을 유추할수도 있는데, 호르쇼브스키의 경우는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대 후자에 해당하는 것 같다. 한 6년쯤전에 우연히 그의 평균율 제1권 연주를 손에 넣었는데, 처음 글쓴이를 의심케한 것은 너무나 저렴한 가격이었다. 정말이지 싼게 비지떡이라고 이런 저렴한 가격에 얼마나 훌륭한 연주가 담겼겠는가하는 의구심을 갖고 그의 음악을 들었다. 그런데 듣는 순간 글쓴이는 부질없는 편견의 존재에 통감했다. 이런 저렴한 가격에 이렇게 음악적으로 훌륭한 음반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글쓴이는 약간 넋이 나갔다. 그의 평균율은 미국의 뱅가드 클래식 레이블에서 출반된 것으로 국내에는 오아시스 레코드사가 판권을 갖고있다. 뱅가드 레이블은 그! 논란의 대상이 되는 시게티의 바흐 무반주 바이올린곡(극명한 엇갈린 평가를 달고 다니는 음반으로 한쪽에서는 최고의 연주로 평가하는가 하면,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구태의연하다 혹은 수구적이다 라는 혹평을 가하기도 함)의 음반사이기도 하다. 무반주 바이올린 덕택에 국내 애호가들한테 비교적 잘 알려져 있는 레이블이다. 그런데 시게티 음반은 별론으로 하고 호르쇼브스키의 이 음반은 그때가지 글쓴이는 그 존재 자체를 몰랐다. 더구나 그의 약력도 거의 배일에 쌓여 있었서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진 면목을 알기도 어려웠다.

그의 평균율에서 느껴지는 평온하고 사색적인 선율은 도저히 흉내낼수 없는 카리스마를 지니는데, 글렌굴드나 리히테르의 연주와는 완전히 존재의 축을 달리하는 연주로 보인다. 호르쇼브스키에 대해서 알아보려고 나름대로 노력 하였으나 그렇게 쉽지 않았다. 국내에는 그에 대한 정보가 너무나 없었다. 여러방면으로 음악하는 분에게 문의 해보아도 결과는 마찬가지 였었다. 그러나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자료를 뒤지다가 몇몇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역시나 ! 음악에서 느껴서 유추된 그의 삶은 실제의 그것과 별반 차이가 없음을 알게 되었고, 또한 그의 평균율에 대해서도 서로 상반된 시각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는 전적으로 애호가들의 몫에 달려 있겠지만, 글쓴이는 그의 평균율을 최고의 피아노 연주로 생각한다. 사조상 호르쇼브스키는 켐프나 에드윈 피셔등의 피아니스트와 마찬가지로 후기 낭만파의 명맥을 현대에까지 전한 음악가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평균율은 상당히 사람의 정서에 호소하는 바가 크다. 아주 장수한 음악가로써 삶의 경륜과 관조감이 한편의 장대한 여정의 대하소설처럼 펼쳐져있다. 아래에서 호르쇼브스키가 어떤 사람인지? 그리고 그의 음악은 어떤지에 대하여 나름대로 이야기해 보려한다.

Ⅱ.호르쇼브스키(Horszowski/ 1892.6.23.~1993.5.22)의 생애와 그의 음악

호르쇼브스키(Mieczyslaw Horszowski)는 1892년 6월23일 폴란드 Lvov에서 태어났으며 쇼팽을 사사했던 Karol Mikuli의 제자인, 그의 어머니를 통해 제일먼저 피아노교육을 받았다. 이후 그는 비엔나에서 체르니의 제자이자 프란츠 리스트에 버금가는 저명한 피아노교육가인 레셔티츠키(Theodor Leschetizky)에게서 공부를 하였다. 1905년 포레(Gabriel Faure, 1845-1924))를 위해 연주했으며, Nice에서 생상(Charles-Camille Saint-Saens, 1835-1921)을 만났다. 이듬해엔 아르투로 토스카니니와 파블로 카잘스를 만났는데, 이들 둘과는 나중에 친밀한 음악적 동반자이자 친한 벗이 되었다. 호르쇼브스키는 1900년 8살짜리 신동으로서 유럽등지에서 콘서트 연주회를 가지기 시작하였으며, 10세때에는 비엔나에서 첫 번째 리사이틀을 가졌다. 5년이라는 기간동안 그는 북.남미를 연주여행하였다. 1911년 그는 음악경력을 뒤로한채, 파리의 소르본느(Sorbonne)에서 문학, 철학, 미술사공부에 전념하였다. 그후 카잘스의 도움아래 다시 콘서트무대에 돌아오게 되었으며, 1차대전후 밀란(Milan)에 정착하였다. 2차대전이 발발했을때 그는 브라질 연주여행 중이었으며, 유럽에 돌아오는 대신에 미국으로 갔다. 그곳은 그가 죽을때까지 고향으로 삼았던 곳이었다.

초창기에는 비록 젊은 솔로이스트로써의 명성을 쌓았을지라도, 그는 이후에는 그의경력의 많은부분을 실내악에 전념하였다. 그의 다년간의 카잘스와의 협연은 아주잘 알려져 있으며, Prades Festival, Casals Festival, Marlboro Festival 등과같은 많은 실내악 페스티발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였다. 그와 협연한 음악인들 중에서 유명한 이로는 Joseph Szigeti, Alexander Schneider, Walter Trampler, Budapest Quartet 등이 있다. 그의 연주경력에서 또다른 두드러지는 것들로는 토스카니니와 그가 이끄는 NBC 교향악단에 협연으로 참여한것, 12번의 뉴욕연주회를 통해 펼쳐진 1957년의 베토벤 피아노 솔로전곡 순회연주, 1960년 뉴욕에서의 모차르트 피아노소나타 전곡의 순회연주 그리고 2년후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의 10곡의 모차르트 피아노 콘체르토연주 등이 포함된다. 그는 미국 백악관에서 케네디와 카터대통령을 위해 연주하기도 하였다. 1973년에 호르쇼브스키는 American Museum-Hayden Planetarium에서 폴란드출신의 위대한 천문학자인 니콜라스 코페르니쿠스 탄생 500주년을 기리는 독특한 콘서트를 가지기도 하였다.

또한 Metropolitan Museum에서, 1720년 Bartolommeo Cristofori라는 발명가에 의해 만들어진, 역사상 가장 오래된 피아노로 처음으로 레코딩을 하였다. 이때 호르쇼브스키는 D. Ludovico Giustini di Pistoia에 의해 작곡된 소나타를 연주했는데, 이곡은 Cristofori에의해 의뢰된 곡이며 포르테 피아노를 위해 쓰여진 최초의 작품이기도 하다. 그리고 현대음악가의 작품도 그의 연주 레퍼토리에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 그는 Honegger, d'Indy, Martinu, Villa-Lobos, Stravinsky, Szymanowski, Joonas Kokkonen등의 작품을 연주했었다. 호르쇼브스키는 수많은 레코딩을 남겼는데, 우선 1930년대중반 HMV디스크에서 카잘스와 녹음을 시작하였으며, 이후 솔로와 실내악및 콘체르토 레코딩을 Columbia/CBS/Sony, Mercury, Vox, RCA Victor, Vanguard, Deutsche Grammophon, Nonesuch등의 레이블을 통해 계속하였다. 많은 음반들을 cd를 통해 들을수있으며, 새로이 발견된 라이브연주가 그의 사후에 출시되고 있다.


과거의 위대한 음악가들과 미래의 젊은아티스트들을 잇는 가교로서 호르쇼브스키는 연주와 레코딩 뿐만아니라 음악교육을 통해서도 음악계에 셀수없는 기여를 하였다. 수년동안 그는 필라델피아의 커티스 음악원(Curtis Institute of Music)의 교수단의 저명한 일원으로 있었는데, 그의 제자중에 이름난 이로는 Seymour Lipkin, Anton Kuerti, Peter Serkin, Murray Perahia, Richard Goode등이 있다. 호르쇼브스키는 필라델피아에서 1993년 5월22일 100살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메릴랜드대학 도서관의 자료를 글쓴이가 서툴지만 번역한것임.)

Ⅲ.글쓴이가 생각하는 호르쇼브스키의 평균율

평균율연주 레코딩을 보면 쳄발로와 피아노 양편에서 어느정도 상당한 레코딩이 행해져 있음을 알수있는데, 쳄발로의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해석(물론 쳄발로의 운용에 따라서는 주관적인 면을 강조할수 있지만 피아노라는 악기와 관계적으로 대비시켜 바라본다면 쳄발로가 좀더 객관적이라 생각되어서 이렇게 말한것임)과 피아노의 풍부한 감정을 앞세운 주관적이고 낭만적인 해석은 항상 감상하는 이들의 가슴을 설래게 한다. 쳄발로의 경우 발햐의 순수하고 소탈한 연주나 득도의 경지를 표현한 레온하르트의 연주등은 여지껏 명실상부한 권위를 누리고 있는 것 같다. 요즘의 비교적 젊은 연주자들(글쓴이도 젊지만)은 차랑차랑하고 풍부한 울림의 메리트를 앞세워 이곡에 도전하고 있지만, 글쓴이의 좁은 생각으로는 과거세대의 명인들에 비해 그렇게 성공적인 연주업적을 이룬이는 그다지 많지 않다고 본다.

이점은 피아노 연주영역(글렌굴드, 리히테르, 니콜라예바의 연주가 호평받음)에 이르러도 별반 차이가 나지 않는 것 같다. 음악을 집중해서 듣고 감상 횟수를 점차 증가시켜가는 과정에서 감상자가 괴롭게 느끼는 것 중에 하나가, 곡의 해석에 대한 단점이 약간씩 감지되다가 나중에는 그 단점이 엄청나게 크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주관적이기 때문이라고 치부하거나 “감상자가 연주자를 이해하라고 하는 논리” 로 묻어 둘수도 있지만 아무래도 감상자에게 이를 설득시키기에는 부족한 논리전개인 것 같다. 이러한 음악을 바라보는 생각의 편차는 결국 연주자와 감상자 사이의 갭으로 작용하게 되는데, 이러한 갭의 본원적인 이유는 “연주자(혹은 연주자출신 평론가)는 실제 연주와 결부시켜 미시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강한 반면 감상자(특히 글쓴이같은 음악을 전공하지 않는 이들)는 그 특성상 부분보다 전체를 거시적으로 접근하는, 즉 음악을 바라보는 관점자체의 차이”에서 연유한 것 같다.


누군가 1000번이상 들어도 싫증나지 않는 음악은 바흐라는 말을 한적이 있는데 이 말은 정말이지 합당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어느 누구라도 바흐의 대위선율이 발산하는 무소유의 아름다움에 몰입한다면 심오하기로 이름난 베토벤의 후기 음악조차도 태산에 티끌같다는 생각을 할 것이다. 바흐의 평균율이 피아노부분에서 음악적으로 융숭한 대접을 받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실제로 일반 음악학도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글쓴이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연주가 기교적으로 쉬운지 어려운지 아니면 피아노칠때 어떤부분이 연주자를 괴롭게하는지 몸소 경험하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난감하다. 글쓴이의 그다지 길지않은 음악 감상경력을 뒤돌아 보건데, 바흐음악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음악의 하나가 이 평균율이라고 생각한다. 그 어렵다는 푸가의 예술(BWV1080)도 이것에 비하면 약과라고 생각된다. 조성이 규칙적으로 끊임없이 바뀌므로 음악을 집중해서 듣기도 어렵고 또한 비교적 짧게 끝을 맺는 여러 조각같은 단편들을 귀로만 들어서 그 음악의 묘미를 느끼기에는 다소간 무리가 따르는것도 또한 사실이다. “듣는만큼 들린다”는 말도 이 평균율 앞에서는 무색하기까지 한것같다.


서언에서 운을 띠운 것 처럼 그의 생년을 보면 19세기 후반의 카잘스, 켐프, 시게티등 다른 바흐해석의 대가와 마찬가지로 후기 낭만파의 토양아래서 음악을 다져왔음을 알 수 있다. 그들에 의한 바흐해석은 멘델스죤이래의 바흐와 낭만파음악간의 음악적 교류의 역사의 연장이라고 봐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인지 호르쇼브스키의 연주에서 우러나오는 질박한 서정성은 사람의 정서에 합치하여 삶 자체를 대변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의 음악이 신비주의에 가탁하거나 기교주의에 치우친것도 아니다. 경건한 몸가짐아래 순수성을 배양하여 음악이 따스하기 이를데가 없다. 또한 지나치게 고압적이라든지 바흐는 이래야 한다든가하는 고집을 결코 부리려 하지도 않는다. 철저히 마음이 가는데로 유유히 물흐르듯이 뚜벅 뚜벅나아갈 따름이다. 카잘스의 무반주 첼로 연주와 마찬가지로 그의 평균율에서도 순수미가 낭만성의 한켠을 굿건히 채우고 있어서 음악 이 통속적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에 제동을 거는 역할을 하고있다.


어떤 이의 지적대로 그의 전주곡1번을 들어보면 손가락이 순간적으로 뒤엉킨 것처럼 리듬에서 있어서 다소 균형감각을 잃어버린 느낌을 주는 부분이 존재한다. 음악의 전개에 있어서 균질적인 흐름은 몹시도 중요하여 이러한 균형감 상실은 글쓴이 같이 귀로 감상만 하는 이가 보아도 그다지 애호하지는 않는다. 특히나 연주를 염두에 둔 사람이 바라 보았을 때의 곤혹스러움은 눈에 선하다. 그런데, 글쓴이는 피아노로써 전주곡1번을 별 하자 없이 잘 연주하는 이를 아직 한번도 보지 못하였다. 파격적인 해석을 앞세운 글렌굴드의 세심한 레코딩을 들어보아도 그의 각고의 노력에 불구하고 선율의 흐름상 어색한 부분이 존재한다. 리히테르의 연주는 피아노에 약음기를 단 것 같이 선율선을 너무 과장한 것 같아서 부담이 가고 켐프의 연주는 너무 빨리 연주하여 음미할 여유조차 주지 않는 단점이 있고 최근 젊은 연주자의 연주는 너무 몽환적인 면을 강조하여 신비주의의 굴레를 벗어 나지 못한 느낌이 들어서 손이 가지 않는다. 이처럼 여러 사람의 연주를 종합적으로 보면 이 1번 전주곡은 아주 간단하고 추상적으로 작곡되어 있지만 정작 연주하기에는 너무나 힘이 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호르쇼브스키의 연주를 평가함에 있어서 전주곡1번을 가지고 평가하기에는 전주곡자체의 음악적 표현의 난해성, 다른 연주자들의 연주등과 비교해서 공평한 평가가 되지는 않는다고 본다. 오히려 음악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세운 틀을 근거로 초지일관하는 호르브쇼프스키의 진중함에 박수를 보내야 할 것 같다.


호르쇼브스키의 연주는 외관상 굴드가 이룩한 넌레가토 지향의 연주와 켐프가 견지한 레가토 지향 연주의 합일점을 달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굴드와 달리 온화하고 두툼한 음색을 유지하고 있으며 많은 경우 템포를 느리게 잡고 한음 한음 음미하듯이 음악을 풀어나가는데 이는 켐프의 해석방향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일부의 전주곡과 푸가를 보면 스타카토와 악센트로 중무장한 경우도 보이는데, 굴드보다 오히려 더욱 리드미컬한 맛을 주는 때도 있다. 이는 굴드의 연주의 연주성과도 받아 들인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되는 대목이다. 굴드의 경우는 쳄발로의 세밀한 음색을 처음부터 뇌리에 깔고 연주하고 있어서 전체적으로 생동감있는 음악을 펼쳐 보이지만 정작 리드미컬한 맛은 호르쇼브스키보다 못하다 할 것이다. 그리고 곡의 핵심을 파악하여 음악을 간결하고 곡을 깔끔하게 마치는 종지의 모습도 굴드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90을 훨씬 넘겼던 장수형의 음악가(켐프나 카잘스는 96세까지 살았음)가 있는가하면 굴드처럼 그 절반 정도인 50여세 남짓 살다간 이도 있다. 호르쇼브스키의 경우는 드믈게도 100살을 넘긴 장수형의 음악가이다. 일반인중에서도 100살을 넘긴 이들은 아주 희귀한데, 음악가로서 호르쇼브스키가 평소 얼마나 흔들림이 없는 굳건한 사람인가 엿 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게 오래 살려면 그다지 화도 내지 않았을테고 괜한 일에 속앓은 일도 적었을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꼭 수명을 가지고 그의 삶과 인격을 판단하기는 뭐하지만, 그것들을 판단하는 한 척도는 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그가 남긴 이 평균율 제1권을 듣고 음악과 그을 느껴보면 그의 삶과 인격과 철학을 유추해 낼수 있을 것이다. 누구보다도 경건하고 절제된 삶을 살았을것이고 훌륭한 인성을 바탕으로 끝없이 공부했던 학구적인 음악가의 삶이었을 것이다. 호르쇼브스키는 이제 가고 없지만 그가 남긴 경건하고 사색적인 바흐 해석의 전통은 후대의 음악인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할 것이다. 요건데 그는 평온한 이 평균율의 정신을 자신의 삶에 가장 투영한 피아니스트가 아니였나 생각해 본다. 아래에서 외국의 어떤분의 글로 마무리하려 한다.


“호르쇼브스키는 80대후반에 평균율 제1권의 일련의 전주곡과 푸가을 레코딩 했었다. D장조와 G장조 전주곡과 푸가의 신속하고 가벼운 터치의 해석이 단적으로 말하듯이, 그의 음악적 기교는 매우 견실하며 그의 나이치고는 매우 조심스럽고 정제되어있다. 그는 매우 가볍게 처리하는 통상적인 연주와는 달리 C-sharp, E-flat, B-flat, b minor의 푸가들을 더욱느리게 연주하여 악센트와 템포의 움직임의 미묘한 뉘앙스를 곡에 불어넣고 있다. 때때로 질질 끌리는듯한 G minor푸가 역시 그의 활력적이고 가보트같은 취급 때문에 듣기가 좋다. 게다가 호르쇼브스키는 통찰력있는 결과를 얻고 있으며 사실상 페달의 도움없이 아름다운 음색의 노래하는 음조로 음악을 끌고 나간다. 어떤 감상자는 안젤라 휴이트의 장식적인 정교함을, 예프게니 코로리오프의 리드미컬한 추진력을, 혹은 글렌굴드의 확고한 개성을 좋아한다. 그러나 반복해서 듣다보면 호르쇼브스키의 예술적 특이성에 빠져들게 된다. (어떤 외국인의 리뷰성 글을 글쓴이가 번역한 것)”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