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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흐의 추천 음악들  21세기 바흐해석 방향에 대한 단견(短見)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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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니홍조]를 일깨우는 음악, 푸가의 예술(BWV1080)  가을에 듣는 명곡 [골드베르그 변주곡]
 무반주 첼로 모음곡(BWV1007~1012)  호르쇼브스키의 평균율 제1권(BWV846~869)연주
 발햐의 바흐 쳄발로 레코딩  

가을에 듣는 명곡 [골드베르그 변주곡]

*** 게시판에 올라왔던 BACH2138님의 글입니다. ***

1,2년전에 이글 한번 올린적 있는데, 부족한게 많아서(여전히 빙산에 일각이지만) 다시 올리려 합니다. 분량이 많아서 2,3회 정도로 나눠서 올리려 합니다. 그리고 아주 웃기는 곳에서 블로그 하나 만들었습니다. 좀 더 다양한 층에서 바흐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에서 아래블로그에도 동일한 글을 실어 놓았습니다.
제 블로그 주소 - http://www.mediamob.co.kr/BACH2138/postList.asp

ㅡ 마음의 평정을 가져다 주고 고독을 벗하는 선율/ 바흐를 향한 최초의 관문 ㅡ

[Ⅰ.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처음 접하며]
[Ⅱ.이곡의 작곡 유래에 대하여]
[Ⅲ.이곡의 기본구성]
[Ⅳ.피아노로의 연주가능성]
[Ⅴ.바흐는 어떤 사람인가?]
[Ⅵ.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흐음악의 특징]
[Ⅶ.골드베르그변주곡의 명반들]
[Ⅷ.글을 맺으며]


Ⅰ.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처음 접하며

골드베르그 변주곡(Goldberg Variations, BWV 988)은 글렌굴드의 이름을 바흐 음반사에 찬란하게 부여한 그의 분신과도 같은 곡이다. 이곡은 지금부터 한 9년전에 우연히 정말 우연히 이곡을 접하게 되었다. 이곡의 작곡 경위는 심한 불면증이 있는 글쓴이에게 큰 호기심을 주었는데, 맨처음 들은 음반은 "빌헬름 켐프"의 연주였다. 켐프의 연주는 따스한 인간미를 가져다 주며, 한겨울의 설한의 추위를 녹여줄 햇살같이 훈훈한 음악이었다. 그 부드럽고 가식없는 연주는 바흐가 애당초 목적한 수면음악의 모습에 부합한다고 볼수 있을 것이다. 켐프는 익히 알려진대로 베토벤, 슈베르트음악에 정평이 나있는 연주가이지만 그도 바흐에 일가견이 있던 피아니스트였다. 그가 그려내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정통 피아니즘이 어떤지를 몸소 보여주는 연주이다. 켐프도 카잘스와 마찬가지로 후기 낭만파의 명맥을 이어온 음악가로 평가할수 있을 것이데, 그들의 연주에 낭만성이 짙게 뭍어져 나오는 것은 어쩌면 그들의 존립의 기초를 보면 당연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것은 일정하게 이들은 순수성을 부여하려고 끝없이 노력 했다는 사실이다. 어쨌던 빌헬름 켐프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연주는 굴드의 그것과 더불어 최고의 평가를 받는 곡으로 애호가들 사이에서 받아들여 지고 있는 것같다. 켐프의 이 연주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 맛이 울어나는 뚝배기 그릇 같이 질박하고 순박한 느낌이 드는데, 아무리 감상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 음반으로 골드베르그 변주곡의 불멸의 명반중의 하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시시콜콜한 이야기지만 Goldberg 변주곡에서 Goldberg를 어떻게 부를까에 대해 의문을 제시한 글을 본적이 있는데, 골트베르크로 하자는 견해, 골드베르크로 하자는 견해등이 입론가능할 것이다. 글쓴이는 어감상 부르기 좋게 그냥 골드베르그로 지칭하려 한다.

Ⅱ.이곡의 작곡 유래에 대하여

감상자를 미치게하는 이 마술같은 변주곡은 흔히 쳄발로(=하프시코드=클라브생/ 유건탄현악기/ 피아노의 전신격 임)연주자 요한 고트리프 골드베르그(1727-1756)를 위해 작곡되었다고 전해진다. 바흐의 후원자인 카이절링크 백작은 그당시 심한 불면증에 고생하였는데, 백작은 마음을 평정시키 느긋하게 해줄수 있는 음악을 원했다. 당시 궁정의 연주가인 바흐의 제자인 골드베르그는 백작으로 부터 쉽게 잠을 청할수 있는 음악을 작곡하라는 지시를 받고 고민끝에 스승 바흐를 찾아갔다. 바흐는 자초지정을 듣고, 평상시 많은 배려를 해준 백작을 위해 작곡을 시작하였다. 이곡에 사용한 주제는 자신이 작곡한 안나 막달레나를 위한 음악노트 '클라비어곡집 제2권' 에서 사라방드(3박자의 느린춤곡)를 차용하였으며, 여기에 "아리아" 라는 이름을 붙이고 이를 바탕으로 30편의 변주를 배치하고 마지막엔 다시 아리아를 붙여 곡을 끝맺고 있다. 이곡을 밤마다 나지막하게 들으며 백작은 잠을 청할수있게 되었다한다. 이에 따라 이곡의 이름도 본래의 이름보다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으로 통용되게 되었다.

Ⅲ.이곡의 기본구성

이곡은 아리아와 30개의 변주곡으로 구성되었으며, 조성는 G장조를 기본(g단조는 3부분)으로하고, 9곡이 캐논형식(돌림노래 형식으로 구성된 음악의 한 형식)이며, 제30번 변주곡은 당시의 유행가를 차용하여 곡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곡의 마지막에는 다시 아리아를 반복하게 하여 서사시 같은 긴 여정을 회고하듯 마무리 짓게 하고 있다. 세번째의 변주마다 캐논을 배치하여 형식상의 일관성을 부여하였으며, 수학적인 느낌이 들 정도의 엄격한 짜임새를 바탕으로 기본주제로 부터 무궁무진한 변화를 이루고 있는데, 건반악기가 지니는 표현력을 통해 심오하고 품격높은 음악을 만들어내고 있다. 원전연주의 대부로 군림하는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같은이는 이곡을 푸가의 기법 (BWV1080)과 더불어 바흐를 향한 관문으로 여길 만큼 높이 평가한다. 사실 음악가에게 그렇게 받아 들여지는 것이 무척 의외이기도한데, 글쓴이 처럼 음악을 감상 목적으로 듣는 많은 분들중에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 때문에 바흐에 심취하게 된 경우도 많은 듯하다. 고금을 통해 이 변주곡은 건반음악에서 최고의 변주곡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런 형식의 곡으로서 골드베르그 변주곡에 필적할 곡은 베토벤의 "디아벨리 변주곡"정도가 있다고 한다.

이 변주곡은 1741년에서 42년 사이에 출판되었다. 이곡의 본래의 이름은 초판본의 첫페이지의 악보에 기재된 "2단의 쳄발로를 위한 다양한 변주곡을 가진 아리아" 이다. 전곡을 연주하는데 50분 내외에서 80분(반복연주를 할 경우)내외의 시간이 걸린다. 각 변주는 화성적인 골격을 근간으로 하면서 다채로운 방식으로 성격 변주의 형식으로 곡상을 전개한다. 다만 곡이 지나치게 길고 완만하게 되는 것을 인식하여서 인지 곡의 중반부인 제16번 변주에서는 프랑스풍의 서곡을 배치하여 곡의 지루함을 달래고 있다. 그래서 제16번 변주 부터는 전체적으로 새로운 음악이 시작되는 느낌 마저 든다. 이곡의 골격은 다음과 같다.

주제(아리아)는 G장조 3/4박자.// 장중한 사라방드풍의 곡으로 장식음을 비교적 많이 쓰고 있으며 평온함이 넘치는 아름다운곡이다. 이 선율은 바흐의 작품이 아니라는 설도 있으나, 1725년의 "안나 막달레나 바흐를 위한 클라비어 소곡집" 제2권에서 발견된다. 이곡의 연주에서 가장 개성적인 것으로는 익히 알려진 글렌 굴드나 로잘린 투렉의 느린연주가 정평이 나있다. 정반대의 시각에서 빌헬름 캠프의 장식음을 땐 빠른 연주도 매력적인데, 마치 옛적 이야기를 하는 할머니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해석이다.

제1변주는 G장조 3/4 박자.// 매끄러운 음계진행을 잘 부각시킨 리드미컬하고 경쾌한 느낌을 주는 활발한 변주이다. 쳄발로(개인적으로 제1변주는 랄프 커크패트릭의 연주가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 됨)는 별론으로 하고 피아노로는 음악적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어려운 변주곡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제2변주는 G장조 2/4박자.// 아기자기한 맛을 풍기는 선율이 인상적이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특히 그의 최후의 레코딩)가 이 제2번 변주곡을 가장 잘 연주한다고 생각한다.

제3변주는 G장조 12/8박자.//이 변주곡은 성부간의 대비감을 또렷하게 연주하면 더욱 경묘한 맛이 우러난다. 특히 왼손의 진행이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곡이다. 우주적인 느낌(글렌굴드의 두 번째 레코딩이 특히 그러한 느낌을 줌)이 들며 매우 온화한 느낌(빌헬름 캠프와 헬무트 발햐의 연주에서 그런 뉘앙스가 풍김) 이 드는 변주이다.

제4변주는 G장조 3/8박자.// 경쾌하고 활기있는 곡으로 비트(굴드나 레온하르트는 이점을 매우 강조하고 있음)있는 선율의 전개가 이색적으로 와 닿는 곡이라 생각된다. 이 4번 변주는 특히 발햐의 부드러운 연주가 이곡의 특성을 잘 표현하는 것 같다.

제5변주는 G장조 3/4박자.// 때굴때굴 구르는듯한 분위기가 뭍혀 나온다. 약간 자기방어적인 느낌도 가져오는 경묘한 곡으로 호기심 어린 소년의 모습도 연상된다.

제6변주는 G장조 3/8박자.// 약간 정제된 느낌을 주는 느린 곡이다. 속박된 무언의 억눌림이 느껴지기도 한다.

제7변주는 G장조 6/8박자. 약간 도전적이고 다소간 항의적인 느낌이 감도는 시칠리아나풍의 곡이다. 선율적이고 자조적인 분위기도 느껴진다.

제8변주는 G장조 3/4박자.// 2단 건반용의 것이기 때문에 현재의 피아노로는 연주하기 어렵다고 한다. 뭔가 훌훌 던져버리고 싶은 자유스러움에 대한 동경이 느껴지는 활발한 토카타풍의 곡이다.

제9변주는 G장조 4/4박자.// 매우 유유자적한 고고한 분위기가 아련히 감도는 변주이다. 시적 감흥에 심취하여 아름다운 시를 쓰려는 시인의 여유로운 산책같은 느낌이드는 곡이다.

제10변주는 G장조 2/2박자. 막힌데 없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강인한 모습이 떠오르는 변주이다. 앞의 변주곡이 여성적이라면 이 10번 변주는 남성적이라 할 것이다. 장식음을 극도로 자제한 빌헬름 캠프의 연주가 매우 순박하게 와 닿는 곡이다.

제11변주는 G장조 12/16박자.// 다시 약간 가라않는 심적 상태를 나타내는 다소 정적인 변주로 토카타풍의 곡이다.

제12변주는 G장조 3/4박자. 뭔가 바라는 아니면 심사숙고하는 뉘앙스가 풍겨져 나오는 서정적이고 약간은 센치멘탈한 분위기가 발현되는 변주이다.

제13변주는 G장조 3/4박자.// 지금까지의 변주 가운데 가장 사색적이고 시적 감흥이 넘치는 세심한 심적상태를 표출하는 유미한 선율을 가진 변주이다. 전반부(제1~15변주까지)에서 가장 심도높은 변주중의 하나라고 생각된다. 곡의 흐름상 현악기 선율로 표현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변주이다.

제14변주는 G장조 3/4박자.// 쾌활한 느낌을 주는 전주곡 혹은 토카타풍의 변주이다. 피아노로 연주하면 극명한 해석이 차이를 감지 할수있는데, 일반적으로는 글렌굴드가 불어넣은 쳄발로 지향의 스타카토를 살린 강렬한 느낌의 연주가 통용되지만 정반대로 레가토를 곡 전면에 포진한 빌헬름캠프의 해석도 웅장하기 이를데 없다고 생각된다. 막힌 속이 후련할 정도로 활기찬 곡이다. 앞뒤 변주와는 대조의 묘미가 다채롭게 느껴진다.

제15변주는 g단조 2/4박자.// 단조곡 답게 멜랑꼬리한 정서가 감지되는 매우 여성적인 곡이라고 느껴진다. 풍부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느리고 우아한 곡이다. 이 변주곡집에서 사용된 단조곡으로 이 15번 변주가 첫째로 스타트를 끊고 있다. 특히 쳄발로가 이변주를 운치감 있게 잘 표현 하는 것 같다.

제16변주는 G장조// 전반은 2/2박자, 후반은 3/8박자로 되어있는 활기찬 곡이다. 이곡은 "서곡"이라고 적혀 있는데, 변주곡이 지나치게 긴것을 의식하여 작곡자 자신이 변주곡에 긴장감을 부여하기 위해 부가한것으로 보이며 앞의 곡과는 분리되어 제2부를 새로 시작하는 느낌이 든다. 곡이 발산하는 느낌은 팡파레같은 저돌성이라 생각된다.

제17변주는 G장조 3/4박자.// 뭔가 성마르고 조급한 심적 상태를 표현 한 것 같은 뉘앙스가 느껴지는 토카타풍의 곡으로 뒤로 갈수록 약간 격정적인 느낌도 든다.

제18변주는 G장조 2/2박자.// 골드베르그 변주곡 가운데서도 가장 리드미컬한 맛이 일품인 곡이다. 무곡같은 느낌이 들정도로 어깨가 넘실댄다. 상당히 당당하고 위엄있는 곡이다.

제19변주는 G장조 3/8박자.// 무곡풍의 다소 여유로운 자태도 간직하고 있으며 마치 흐르는 강물처럼 무심한 느낌을 전달하는 것 같다.

제20변주는 G장조 3/4박자.// 화려한 장식음의 묘미가 기교적으로 선뜻 와닿는 곡으로 이러한 느낌은 세밀한 음조의 쳄발로에 아주 합당 하다고 생각된다 피아노로는 아무래도 약간 허전한 느낌이 든다.

제21변주는 g단조 4/4박자.// 이 변주곡에서는 2번째의 단조곡으로 아주 사색적인 곡인데, 멜랑꼬리 하다기 보다는 상념의 바다를 거니는 불면증 환자의 자조같은 느낌이 든다. 쳄발로의 차랑차랑한 잔향이 멋진 운치감을 부여한다.

제22변주는 G장조 2/2박자.//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변주곡이다. 외관상으로는 온건하지만 음악이 발산하는 뉘앙스는 굳건한 것 같다.

제23변주는 G장조 3/4박자.// 대위법의 묘미를 잘 표현하고 있어서 매우 변화무쌍하게 느껴진다. 즉흥적인 요소가 있고 번쩍이는 화려함도 있다. 곡전체는 남성적이고 강건한느낌이 든다.

제24변주는 G장조 9/8박자.// 이곡은 내성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부드러운 변주이다. 후반부로 가게 되면 자잘한 표현으로 애조어린 느낌도 전달한다.

제25변주는 g단조 3/4박자.// 느리고 로맨틱하고 환상적인 느낌을 전달하는 곡으로 이변주곡의 세 번째 단조곡이다. 바흐가 배치한 이 세편의 단조 변주곡들은 장조선율의 평안함에 센치멘탈한 느낌을 부가하여서 한 1시간이 넘는 긴여정의 선율여행에 활력소 역할을 하게 하는 것 같다. 완만하기 이를데 없는 이곡을 적시는 단비같다는 생각이 든다.

제26변주는 G장조// 전주곡풍으로 18/16과 3/4박자의 선율을 대립시키고 있다. 긴장감이 전편을 휩싸고 있는 화려한 변주곡이다.

제27변주는 G장조 6/8박자.// 뭔가 쫓기듯히 앞을 내달리는 사람같다. 별일 아닌데 조급해 하는 그런 느낌이 이변주에서 느껴진다.

제28변주는 G장조 3/4박자.// 한음한음 또박또박 연주하는 가운데 규칙적인 트릴의 사용이 곡을 매우 기교적이고 화려하게 돋보이게 한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이변주곡 연주는 정말이지 심도가 높다고 본다. 그정제된 화려함속에서 세상사의 이치를 깨달은 구도자의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제29변주는 G장조 3/4박자.// 곡전체가 화음을 잘 사용하고 있는데, 쳄발로로 연주하면 더욱더 풍성함을 맛 볼수 있다. 곡상은 매우 진취적이고 저돌적인 느낌이 든다.

제30변주는 G장조 4/4박자.// 당시의 유행가 선율 두가지(하나는 '캐비지에 순무' 라는 이탈리아 민속 음악이며, 다른 하나는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군'이라는 독일 민요)를 원용하여 대위법적으로 재구성한 변주곡이다. 바흐의 음악적 능력을 볼 수 있는 대목이라 생각한다. 바흐는 작곡은 말할 것도 없고 편곡의 달인인 것 같다.

아리아 다 카포는 G장조 3/4박자.// 마지막의 제30변주 다음에 처음의 아리아를 다시 한번 반복하여 이 기나긴 음악 여정에 통일성과 여운을 남겨주고 있다. 이 아리아를 듣게 되면 앞의 변주곡이 아련한 옛일처럼 느껴지게 할 것이다. (이상 각변주곡에 단 간단한 느낌설명 은 구스타프 레온 하르트의 연주를 중심 기술한것임)

Ⅳ.피아노로의 연주가능성

정식 명칭이 그러하듯 이곡은 쳄발로를 위한 곡 이다. 그러나 음반을 들어 보면 피아노로도 전혀 손색이 없음을 알 수 있다. 손이 크로싱 되는 경우가 많지만 연주자들은 별무리 없이 연주한다. 필자는 음악에 문외한이지만 실황연주를 보면 손이 엇갈리는 장면을 많이 보게 된다. 문제는 연주의 외형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쳄발로로 연주 될때의 폴리포닉하고 풍성한 맛이 피아노로 옮겨지게 되면 실종하게 된다데에 오히려 치명적인 약점이 있다 할 것이다. 따라서 피아노연주는 항상 위태위태한 한계선을 걷는 느낌을 주거나 불안한 시도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이른바, 항상 실패를 감수해야 될 음악이 또한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인 것이다. 그렇지만 음반으로 확인되는 이곡의 피아노로의 성공은 나름대로 우리에게 시위하듯 다가온다. 이러한 약간 모순적인 현상은 바흐음악의 외형적인 특징과 음악적 내용의 구체화(혹은 감정이입)라는 바흐음악에 내재하는 강한 미학적 메시지와도 연결는 것 이리라! 피아노라는 악기는 악기의 제왕으로서 고전파, 낭만파를 거치면서 인간 감정의 음악적 표출수단으로 사용되었으며, 작곡자들도 피아노의 기능과 역량에 순응하여 작곡하였다. 하지만 바흐시대에는 대표적인 건반악기가 쳄발로 였으며, 피아노는 태생하는 단계였다고 한다. 쳄발로와 피아노의 기계적이고 음향적인 차이로 인해 피아노로 도저히 처리 곤란한 경우도 있을수 있다. 이는 대위법과 화성적인 면을 강조한 그시기의 음악적 특징과도 연계되는 문제일 것이다. 쳄발로라면 쉽게 뚫고나올 음도 피아노는 자신이 만들어낸 화성의 틀에 갇혀 용해되는 일이 빈번하기 때문이다. 글렌굴드가 스타카토를 전면에 내세워 넌레가토로 음악을 전개하는 이유나, 빌헬름 켐프가 레가토를 견지하면서도 악구를 단순화하고 느린 템포(항상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를 구사하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바흐음악 자체의 특성에 기인하는 것 이라고 생각된다.

Ⅴ.바흐는 어떤 사람인가?

J. S. BACH(1685.3.21~1750.7.28)는 독일의 작곡가로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바로크음악의 대가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음악가를 배출한 것이 특징인데, 음악적 혈통보존을 위해 근친혼도 마다 하지 않은것으로 알려져있다. 요한 세바스찬 바흐는 아버지인 요한 암브로지우스(1645~1695)와 어머니인 마리아 엘리자벳 레메르히르트(1644~1694)와의 사이에서 8명의 아들중에 막네이다. 그는 거의 전 장르의 음악을 만들었으며, 바로크시대의 완성을 이루었으며 다가올 고전파, 낭만파음악의 바탕이 되었다. 그가 손을 덴 수많은 칸타타곡들, 수난곡들, 미사곡, 오르간곡들, 클라비어곡들, 무반주 기악곡, 협주곡들, 관현악곡들은 저마다에서 최고의 지위를 누리는 경우가 많다. 1600년~1750년까지의 약 150여 년간을 익히 알려진 대로 바로크 시대라 한다. 그 년도를 보면 알 수있듯이 바로크시대의 말미를 장식한 인물이 바로 바흐였다. 바흐는 바로크를 집대성한 것으로 평가할 수도 있을 것이다. 바흐의 사후 잠시의 그의 업적은 역사의 뒤안길에 묻혀 있다가 바흐의 위업을 알아본 여러 음악가들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본래의 명성을 회복 하였다. 20세기 들어서서도 이러한 바흐에로의 지향은 계속되었으며 지금도 많은 지지자를 얻고 있다. 베토벤은 그를 일러 "바흐는 실개천이 아니라 바다 이다"(nicht Bach, sondern Meer)라고 하였으며, 막스 레거(Max Reger) 는 "바흐의 음악은 모든 음악의 시작이며 끝이다."라고 극찬을 던졌다.

Ⅵ.개인적으로 생각하는 바흐음악의 특징

1.바흐음악의 악보엔 뭐가 있을까?

필자에게 바흐의 음악이 무엇이라고 묻는다면 나는 나름대로 이렇게 말 할것이다. 바흐음악은 없을 " 無" 라고 대답하겠다. 물론 칸타타곡들, 수난곡들, 미사곡들등의 종교곡들은 그들 자체가 갖는 목적성 때문에 이러한 글쓴이의 생각엔 많은 제한이 따를 것이다. 다만 그렇더라도 궁극적으로 음악을 받아들이는 개개인의 느낌과 생각은 역시 다양 할 것이다. 왜냐하면 크리스찬이 아닌 글쓴이도 그의 종교곡을 매우 열광적으로 좋아하고 이 들곡에서 신앙적인 면을 넘어서 감정의 정화와 신념과 정의감을 배운다. 물론 같이 칸타타를 듣는다 해도 그 음악에 반응하고 생각하는 바는 천차 만별일 것이다. "無" 라는 관념이 잘 반영된 것들은 기악곡들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바흐의 어떤 기악곡이라도 들어보라! 분명히 베토벤 이후의 낭만파 음악과는 지향하는 바가 다름을 알수 있을 것이다. 인간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려 들지 않는다. 아주 완곡하고 은근하게 추상적으로 다가간다. 누군가 바흐를 일러 총체적 영혼이라고 한 적이 있는데, 이 말의 속뜻은 무심한 바흐의 일면을 꼬집는 말일 것이다. 다만 바흐음악이 왜 무심하게 느껴지는 것일까에 대한 물음은 바로크라는 사조적인 특징에 직면하는 문제 할 것이다.

2.음악의 벽을 허무는 개방적 성격

15년전쯤 대학시절 "비니무어"라는 일렉 기타리스트가 연주한 APRIL SKY"란 곡을 무척 좋아한 적이 있었는데 이곡은 바흐음악에서 원용한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쳄발로 협주곡 f단조 BWV1056" 의 제2악장(이선율은 칸타타제156번의 서주인 신포니아에도 사용된 것으로 일명 아리오소라고 불리기도 함)을 원용한 것 이었다. 이처럼 락음악(특히 바로크 메탈)에서 조차 원용되는 특징을 지니고있다. 더 나아가 재즈음악에서는 음악창작의 원천으로서 바흐는 재즈에 영감을 불어 넣고 있기도하다. 필자는 재즈를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얼마전 "바비 맥퍼린"이라는 재즈 연주가가 흥얼거리는" 평균율 제1번 전주곡"을 듣고 기겁을 하였다. 사실 이곡은 "구노"라는 낭만파 음악가가 평균율 제1번 전주곡을 반주로 상정하고, 그위에 단선율을 붙인" 아베마리아"로 더욱 유명한데, "바비 맥퍼린"은 자신이 피아노의 분산음을 허밍으로 처리하고 "요요마(첼리스트)"로 하여금 "아베마리아" 선율을 연주하게 한 것이다. 아주 기발한 발상이며 뛰어난 음악성을 느낄수 있었다. 이렇듯 째즈 아티스트들까지 바흐를 원용하기까지 한다. 그의 음악은 시대를 넘어, 양식을 넘어, 장르를 넘어 클래식의 범주를 확장시키는 개방성을 지닌다고 생각한다.

3.무한한 해석의 가능성

필자는 골드베르그 변주곡음반을 서로 다른 연주악기를 넘나들며 여러종을 들어보았다. 그런데 음반마다 그 전하는 바가 다 다르다는 것이다. 글쓴이가 듣지 못한 다른곡들도 정도에 차이는 있어도 그러하다고 생각된다. 구체적으로 굴드는 고독을, 켐프는 따스한 인간미를, 투렉은 기도하는 마음을, 앙타이는 행복감을, 레온하르트는 구도자의 경지를, 발햐는 순수하고 담백함을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연주자가 이룩하려는 관념에 따라 그음악의 모습이 달라질수 있음을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여실히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이는 바흐음악이 갖는 " 무" 라는 성격과도 닿을 것이다. 바흐 음악은 완결되었다기 보다는 해석되어 질뿐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글쓴이의 생각임)

4.영화음악, 광고음악등에 많이 원용되는 음악

영화 통계 전문지인 버라이어티誌의 조사에 의하면 80년대 부터 최근까지 공개된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근 100여편의 영화가 바흐의 곡을 배경 음악으로 사용한 것으로 집계 되었다고 한다. 굳이 헐리우드 영화를 들먹거리지 않더라도 국내영화나 광고용 음악으로 사용된 예도 다소 있는 것으로 안다. 구체적으로 보면 잉글리쉬 페이션트, 양들의 침묵에서는 골드베르그변주곡이, 작은 신의 아이들에선 두대의 바이올린을 위한 협주곡이, 바이올린플레이어에선 샤콘느가, 내마음의 풍금(국내영화)에서는 무반주 파르티타 제1번 제1곡 알래망드가, 쉰들러 리스트에서는 영국 모음곡등이 사용 되었다. 늑대의 후예들이란 영화에서는 프랑스모음곡이 잠깐 흐른다. 종전 옴파로스 광고에서는 무반주 첼로 모음곡 제1번의 제1곡인 전주곡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5.싫증이 나지 않는 음악

글쓴이는 음악도가 아니다. 그냥 우연한 기회에 바흐를 접하고 그에 푹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바흐애호가가 되어버렸다. 접해보지 않은 째즈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을 좋아 해본적이 있었는데, 바흐를 들은 이후에는 다른 음악은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인지 글쓴이가 듣는 90%정도의 음악이 바흐이며 나머지는 바흐이전 시대의 음악이다. 바흐를 듣기전에 베토벤의 바이올린 협주곡(특히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연주)를 몹시 좋아했었는데, 족히 1000번은 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다시는 듣지 못하겠다.(사실 그후로 거의 듣지 않았음) 듣기가 부담스럽다. 처음부터 끝까지 흥얼거리며 따라할 정도가 되니깐 도저히 들을수 없는 모양이다. 비 바흐음악에선 음악듣기의 소멸시효가 3년정도(하루에 한번씩 들으면 대략 1000번이란 계산이 나옴)인것 같다. 그러나 바흐음악에 이르면 이런 관념은 사라진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여기에 대입시켜 봐도 한 2000번은 들었음직 하다. 그래도 늘상 새롭다. 대위선율을 사용한 음악의 특징 때문이라고 한다. 이곡에 대한 다른 연주자의 음반도 미지의 탐험의 대상처럼 기다려진다. 결국 그끝이 없는 무한대로 치닿는듯한 느낌이 든다. 푸가같은 대위법을 극대화 시킨 음악에 심취한 이후에는 다른 음악가의 작품은 도통 귀에 들어오지 않게 되었다. 물론 그 이유는 잘 모른다. 아도르노(Theoder W. Adorno)의 말이 생각난다. “바흐를 집중해서 계속 들은 뒤에 베토벤의 음악을 듣게 된다면 마치 일종의 경음악을 듣는 듯한 느낌이 들것이다.”

6.심신의 평온을 주는 선율

첼로 연주규범을 확립하고 무반주 첼로 모음곡의 발굴과 그 해석에 있어서 금자탑을 이룩한 카블로 카잘스 같은 이는 일평생을 바흐음악과 같이 하였다. 그가 96세의 나이로 임종할때에도 그가 들은 음악은 바흐라고 전해진다. 바흐음악을 외형적으로 바라보면 굴곡이 그다지 많지 않고 대비감을 바탕으로 한 곡의 분위기 전환이 여타의 음악보다는 아주 밋밋하고 완곡함을 알수 있는데, 이러한 작곡 방식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있는 낭만파 음악의 그것과는 아주 판이 하게 다르다. 이는 평균율 제1번과 그를 낭만적으로 구체화 시킨 아베마리아를 보면 극명하게 드러난다. 또한 미학적 측면에서 보더라도 바흐에는 크리스트교의 신앙적인 뉘앙스가 녹아 있어서 바흐음악은 세속음악이라 하더라도 많은 경우 경건하고 심신을 이완시켜주는 명상성을 간직한다 할 것이다. 이런 연유로 바흐음악를 들으면 심신의 평정에 도움이 되는 것 같다.

Ⅶ.골드베르그 변주곡의 명반들

음반리뷰에 있어서 아주 유의할것이 있는데, 어떠한 유명한 평론가의 평가도 완전무결하지는 않다는점을 명심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70~80%정도는 거의 대다수의 평론가들의 생각이 일치를 보이지만, 나머지 20~30%는 평론자마다 약간씩 다를수 있다고 본다. 평론자체가 가지는 주관적 성격을 생각한다면 수긍이 갈것이다. 따라서 내 생각에는 이러한데, 이사람 생각은 다르네 하고 느끼는것이 어쩌면 당연할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래에서 필자가 명반이라고 생각한 것들을, 보는 사람에 따라서는 그렇지않게 생각하는사람이 있을수 있을 것이다. 이점은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할것이다.

1.피아노곡

1) 글렌굴드의 연주/1981/소니 클래식컬

이곡을 사랑하는 이들도 역시 그러하겠지만, 글쓴이도 굴드와 켐프의 두 연주 사이에서 어느 것을 첫째에 배치 시킬것인지에 대해서 상당히 고심을 하였다. 이 둘의 연주는 피아노 음악을 넘어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대표하는 최고의 레코딩들이기 때문이다. 익히 알려진대로 굴드는 쳄발로 음색을 피아노에 투영시켜서 음악을 일신하는 대혁신을 이루고 있으며, 켐프는 이와는 정반대의 시각에서 정통 피아니즘을 바흐에서 초지일관하고 있다. 이러한 외적 차이에 따라 음악전개의 양상은 많은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이곡의 녹음이 있었던 1981년이라는 시점은 그의 연주역정에서 전성기가 지나가고 음악적 기예 또한 퇴조하는 시기였다. 음색에서 윤기가 많이 사라지고 시적 감흥도 사라지고 있었다. 이런 내외의 악조건에서도 그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연주는 굴드 자신의 바흐 피아노 연주반 가운데서도 최고의 평가를 받아온게 어찌보면 기적 처럼도 보인다. 사실상 마지막 레코딩이 된 이 음반은 지금까지 바흐 레코딩 가운데에서 대중들로부터 끊임없이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중의 스테디셀러이다. 허밍같은 흥얼거림이 곡 면면을 흐르고 있으며, 사람의 감정을 홀리는 독특한 뉘앙스를 주는 음악이다. 요요마 같은이는 음악의 예수가 재림한 것 이라고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구반에 비해 독백하듯 진행하는 아주 느린 아리아와 변화무쌍한 30개의 변주가 배꽃이 뒤엉겨있는 듯한 아름다움을 주며, 아주 치밀한 전개를 한다. 자로잰 듯한 균형감속에서 느림과 빠름, 부드러움과 강한 비트, 바로크적 생동함과 고전주의적 조화로움과 고독을 지향하는 낭만성이 중층적으로 어우러져 양식상의 면에서도 폴리포니적인 느낌을 준다. 굴드의 연주를 들으면 찬연한 대비감과 파격 때문에 결코 바흐가 애당초 목적한 수면음악이 될수는 없을 것이다. 바흐, 굴드, 듣는사람 이 3자가 만들어내는 시공을 초월한 교감으로 생긴 사색감과 가슴 뭉클한 예술성은 음악의 존재. 자신의 존재. 현실의 존재마저 잊게 한다.

"굴드의 모든연주가 다 그렇다고 할수 있지만, 특히 그의 바흐연주는 자신의 고독을 확인하고 그것을 더욱 깊게 축척해나가는, 그리하여 자신의 고독을 완성해 나가는 하나의 인생 행위인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고고하고 위대한 예술작품을 낳게 했던 것이다. 굴드의 연주는 단순한 음악을 연주하는 차원이상의 삶 그 자체 였기에 그의 바흐에서는 사색적인 색채짙게 번져 나오고 있다. 굴드의 이 골드베르 변주곡은 독창적이고 고독한 음악이다. (송영님의 평가)" 우스게 소리로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굴드베르그 변주곡이라고 하는것은 이처럼 해석의 한계를 넘어서는 그의 기발하고 천재적인 음악적 운용을 빗대어 말한 것이리라.

통상 이 음반을 바라보는 시선은 비주류의 바흐로 바라 보는 견해가 많다. 또한 이 골드베르 변주곡에서도 해석이냐 아니면 그것을 넘어선 창조냐 하는 논쟁이 생길 여지는 여전히 있을것이다. 왜냐하면 여기서도 굴드는 넌 레가토를 모토로 하고서 쳄발로의 음색을 지향하여 피아니스틱한 면을 도외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다른이는 다다를 수 없는 감정의 명쾌한 이입도 동시에 추구하고 있어서 그와 다른 시각에서 바흐를 바라보는 측에서는 곱지않은 시선일 것이다. 그러나 글쓴이 생각으로는 바흐음악에 있어서는 정통이니 컬트니 하는것은 의미가 별로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이곡은 어차피 쳄발로곡이 원형이기 때문에 피아노로 연주하는 과정에서는 두가지 패러다임이 상존한다. 굴드나 투렉식의 접근과 켐프식의 접근이 그러한데, 모두 나름의 타당성을 가지니 말이다. 피아노의 연주 외관만을 문제삼아 이분적으로 나누는 시각은 더구나 더하다. 또한 내용실현(감정이입)에 있어서의 독특함을 문제삼아 정통을 벗어 났다고 하는 것도 설득력이 약하다고 본다. 바흐 음악 자체의 무색투명성을 고려한다면 무조건 바흐는 숭고하고 격식을 차리고 연주하여야 한다는 것 역시 바흐 음악 자체의 영역을 스스로 좁게하여 바로크 음악의 추상적 성격을 무시하는 결론에 다다를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2)빌헬름 켐프/1969/DG

이 음반은 70이 넘은 고령의 나이에 녹음한 곡으로 원숙한 삶의 경지를 정통 피아니즘의 관점에서 한치의 오차도 없이 연주하고 있다. 굴드의 연주와는 전혀 반대의 방향에서 이곡을 접근하지만, 양자의 연주를 보면 반드시 대립적인 구도로 볼것은 아니다. 음악의 구체화에 있어서 둘의 연주는 어떤 연주보다도 훌륭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다만 음악을 풀어나가는 방법에서 차이가 날뿐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빌헬름 켐프는 알려진대로 아주 장수한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명인데, 그의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을 들어 보면 왜 그가 오래 산지 알수있을 것이다. 음악에 담긴 흔들림없는 평정심은 아마 그의 일상의 삶 자체에서 기인 한 것일 거라고 보여진다. 독실하고 따스한 인간미를 전하는, 피아니스틱한 바흐의 전범을 그는 여기서 펼쳐 보이고 있다.

앞서 말한 듯이 글쓴이는 이 음반과 굴드의 것중에서 어느것을 첫머리에 둘지에 대해 무척 고심을 했다. 이 두 피아니스트의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격조가 높기로 유명하다. 양자에 대한 호불호의 판단은 궁극적으로 사람에 따라 다를수 있다. 필자는 호불호 판단 불가로 잠정적으로 결론내리려 한다. 다만 자신의 삶을 마멸적으로 희생하며, 바흐의 보다 근원적인 이면의 모습을 포착하기 위해 고민한 글렌굴드의 연주위업을 감안하여 그의 골드베르그를 첫째곡으로 하였을 뿐이다.

켐프도 독일 후기 낭만파 음악의 영향을 받아 현대에 전달한 인물이라는 점을 감안해 보면 피아노가 노래하는 유연하고 로맨틱한 분위기가 전혀 뜬금없는 것은 아니다. 이 골드베르그에 이으러 켐프의 연주는 부조니의 편곡에 맞추어 단순한 악구의 처리가 매우 순수해서 좋다. 그의 바흐 해석은 높은 품격과 안정감에 기반하여 악상을 숭고하게 만드는데 주안점이 놓여 있다. 일견 들으면 밋밋하게 와 닿을 수 있겠지만 켐프식의 질박하고 단순한 접근이 오히려 골드베르그의 진면목인지도 모르겠다. 캠프는 온화한 음의 전개를 통해서 깊은 정신성을 불어넣을 줄 아는 탁월한 능력을 가졌던 피아니스트로 보인다. 들으면 들을수록 뚝배기 국물처럼 진솔함이 우러나오는 음반이다. 레가토를 이토록 지겹도록 견지하면서도 다성음악의 아름다움을 전개시킨다는 것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필자는 이 음악을 맨 먼저 듣고 굴드의 연주를 들었는데, 다시 이음반을 들어봐도 켐프의 연주가 훌륭함은 지워지지 않았다. 사실 글쓴이가 빌헬름 켐프라는 위대한 피아니스트의 진면목을 알수있는 계기가 된것도 이 골드베르그 변주곡 레코딩이다.

이 음반의 아리아 부분은 다른 여타의 곡들과는 다른 곡처럼 느껴지는데, 현재 녹음되어있는 많은 레코딩들이 굴드식의 연주를 따르고 있는데, 이점이 안타깝다. 굴드는 그니깐 가능하다. 다른 연주자의 연주가 맹목적으로 그를 따르려하는 것은 위험한 일이라고 본다. 그를 본받아야 할것은 외형적인 모습이 아니라 곡을 체화시키는 내면적 영감이어야 한다. 오히려 외형적인것을 본받아야 할 진정한 연주는 오히려 바로 캠프의 연주인지도 모를일이다. 이 연주도 외관상 낭만적으로 느껴지지만 엄정함을 놓치지 않았기 때문에 균형성이 매우 뛰어나며, 또한 숭고미가 낭만성과 어떻게 결합할지를 보여주는 곡이다. 바흐음악은 낭만성과는 애증의 관계에 놓여 있다고 보여지는데, 캠프는 표현에 있어서는 기교를 멀리하여 두툼한 색조로 덤덤히 나아가지만, 그가 이곡에 불어넣은 따스한 인간미와 서정성은 필연적으로 낭만성을 부각시키고 있다. 굴드의 연주와 더불어 적극 추천할 이곡의 최고의 명연이라 생각한다.

3)로잘린 투렉/1988/VAI

2003년 7월 경인가 그녀가 88세(1914.12.14~2003.7.17)로 타계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또한명의 바흐 전문가가 갔다는점에서 씁쓸하기 그지없었다. 신선함과 청결함이 감도는 독특한 서정미는 그녀의 바흐해석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같은 캐나다 태생이라는 점에서 굴드와 자주 비교되기도 한다. 그녀의 연주도 스타카토를 전면에 내세운 연주라는 점에서는 굴드의 연주와 유사점을 가진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다만 차이가 나는 부분은 음악을 풀어 나가는 방식인데, 굴드는 어떤 연주든 머뭇거림없이 일사천리로 나아가는 반면, 투렉은 매우 신중하게 곡상을 전개해 나간다. 그래서 느린부분의 연주가 주는 명상적인 느낌은 누구도 재현하기 어려울 것이다. 빠른 부분에서도 곡을 음미하듯이 또박또박 연주하곤 한다. 처음 들으면 약간 답답할수 있겠으나, 천천히 음미해서 듣다보면 그녀의 훌륭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글렌굴드 스스로도 그녀의 연주를 훌륭하다고 칭찬하는 것을 봐도 그러하다. 굴드는 자기에게 영향을 끼친 피아니스트로 투렉을 거론할 정도로 그녀의 음악을 인정해 주었다. 재 녹음된 1998년판도 훌륭하다고 많은 분들이 이야기 한다. 필자는 직접 듣지 못했으나, 그녀의 원숙미를 생각한다면 훌륭할 것이라 믿는다. 그녀의 이 골드베르그 연주는 별이 내리비치는 하늘아래 기도하는 소녀의 모습이 떠오르는 센치멘탈한 서정성이 돋보이며 명상적인 느낌이 감돈다. 굴드의 연주와 더불어 가을에 들으면 제격인 곡이라고 본다.

4)그밖의연주

니콜라예바의 연주는 명성에 비하여 큰 감동을 받지 못하여 언급하지 않겠다. 그러나 훌륭하다고 보는 이들도 많으므로 의구심이 나는 사람들은 직접 스스로 판단하는 것이 타당하리라 본다. 개인적으로 안드라스 쉬프, 가브릴로프, 머레이 페라이어등의 피아노 연주도 실망스럽다.(다만 이에는 반론이 분명히 있을수 있임) 이들 많은 연주들은 뛰어난 테크닉에도 불구하고 바흐를 풀어가는 방식상 글쓴이 생각으로는 퍽 바람직하지는 않은 것 같다. 구체적으로 음색이 지나치게 몽환적이고 외형상의 낭만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음악을 듣기 거북한 것으로 만들었다고 보여진다. 이점은 낭만성을 간직하고도 명반으로 대접받는 켐프의 음반을 보면 더욱 확연히 비교된다. 피아노 연주로 성공하려면 실연을 듣는것 처럼 녹음되어야 하는데, 많은 음반들이 그렇지 않다. 더 무리가 따르는 것은 곡에 숭고성을 부여하려고, 교회에서 녹음하려는 요즈음의 모습을 보면 뭔가 방향설정을 잘못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 곡의 숭고성 부여는 그런 외형적인 기교에 있는것이 아니라, 내적 영감을 얼마나 음악에 몰입시키느냐에 달려있다고 봐야 하기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음악평론가 양현호씨 같은분이 높이 평가하는 “마리아 유디나(1968/필립스)”의 연주는 정식으로 들어 본적이 없어서 무어라 말할수 없지만, 우연한 기회에 아리아 부분을 들어 보았는데, 예사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국내엔 별로 소개되지 않은 음반이지만 양현호씨의 말대로 훌륭한 연주이리라 생각된다.

2.쳄발로연주

1)개량쳄발로 연주

개량쳄발로는 대략 1950.60년대 까지 일반적으로 사용된 악기로 절대음을 유지하는 장점은 있으나 현의 울림의 너무크고 귀를 아프게하는 날카로운 음색 때문에, 점차로 그 사용을 기피하여 개량쳄발로(글렌굴드 같은이는 개량 쳄발로를 거세된 악기로 폄하 하였음)는 퇴조하고 현재는 옛모델을 복원한 원전 쳄발로가 인기를 누리고 있다. 대부분 원전 쳄발로는 반음 낮게 음이 책정되어 있다. 그이유는 현의 낮은 인장력과 풍성한 음색을 만들어 내려는 고려 때문인것으로 보인다. 어째든 개량쳄발로 연주도 훌륭한 연주가 있으므로 아래에서 글쓴이가 괜찮게 평가한 음반을 언급해 보겠다.

①헬무트 발햐/1961/TOCE

필자는 쳄발로곡을 트레버 피노크의곡을 제일 먼저 들었는데, 그당시 처음 느낌은 음악이 왜 이렇게 시끄러울까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그후 피에르 앙타이의 연주를 듣고 쳄발로의 음색에 호감을 느끼게 되었으며, 점차로 폭을 넓혀서 들으면서 레온하르트의 중후함에 감동을 받았다.

헬무트 발햐 (Helmut Walcha/1907.10.27~1991.8.11)는 맹인 쳄발리스트였는데, 그의 연주를 듣노라면 어쩌면 그리도 순수할수 있을까 하는 것이다. 개량 쳄발로 치고는 음색도 깔끔하고 음악을 풀어가는 모습도 전혀 흔들림이 없다. 바흐음악에서 그의 위치는 매우 중요하다. 그가 연주하는 개량 쳄발로(암머 쳄발로)는 다른 쳄발로와는 달리 음색이 비교적 온화한 편이다. 개량 쳄발로 특유의 피곤함, 듣기 거북스러움과는 달리 그가 연주하는 악기의 음색은 그런대로 들을 만하다. 그가 남긴 다른곡 연주도 그러하겠지만, 발햐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출함에 있어서 순수성과 단순성을 염두에 두고 음악을 전개해 나간다. 그의 연주가 가식이 없고 싫증이 잘 나지않는 이유는 이러한 내적인 직관적 통찰력에 기인한 바가 크다고 본다. 이러한 통찰력은 아마도 맹인이라는 특이한 내적 상황에 기인할 것이다. 시각의 세계에서 단절된 그는 각고의 노력으로 일반인이 다다르기 어려운, 내적 직관의 영역을 꿰뚫는 고차원의 경지를 터득하였으리라 생각된다. 원전연주와 달리 볼륨 레벨을 2~3정도 낮게 설정하고서 그의 연주를 들어보면 이 세상 어떤이의 연주보다도 심도높고 무기교의 직관적인 발햐의 음악을 느낄수 있다. 어떠한 아름다운 쳄발로의 음색도 발햐에 다다르면 무색해진다. 그가 불어넣은 초인적인 내적 성찰감과 무색 투명성은 바흐음악의 독실한 성격과 매치되어 숭고한 아름다움을 표출한다. 반복연주를 하면서도 음색의 변화를 꾀하려는 장식음과 같은 외형적 기교를 철저히 배제하고 뚜벅뚜벅 곡을 밀고 나가는 모습이 매우 견실하게 느껴진다. 이점은 현대 쳄발리스트가 반드시 명심해야 할 대목이라고 본다. 지루하리라 생각하고 외면적인 기교를 남발하다 보면 곡의 형평성이 깨어져서 음악이 듣기 거북해지고 곡의 무게가 떨어진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발햐의 골드베르그 변주곡 연주는 과거 애호가들의 필청 음반이었다고 하는데 지금도 그것은 유효하다고 보아야 할것이다. 요컨대, 젊은 애호가들의 감상곡 목록에도 반드시 기재되어야 할 쳄발로곡의 최고의 명곡임을 필자는 확신한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연주와는 어떤식으로든 자웅을 겨룰만한 연주라고 생각된다. 길이 길이 남을 명반으로 평가 받아야 할 것이다.

②랄프 커크 패트릭/ARCHIV/1958

여류 쳄발리스트인 반다 란도프스카의 제자 이기도한 랄프 커크 패트릭(Ralph Kirkpatrick/
1911.6.10~ 1984.4.13)의 연주는 우선 레온하르트 처럼 학구적인 모습이 눈에 띄게 두드러진다. 반복을 생략하고 곡을 철저하리 만큼 깔끔하게 처리하는 능력은 단연코 최고라고 생각된다. 울림이 큰 개량 쳄발로를 마치 어린아이 달래듯이 연주하는 그의 음악적 기예는 훌륭하다. 다만 그의 연주에서도 개량 쳄발로 자체의 태생적 한계는 존재하고 있어서, 간간히 등장하는 오르간 같은 울림이 큰 음색(특히 제2번 변주와 제16번 변주에서 그러함)은 쳄발로의 세밀한 음조와는 맞지 않는 측면이 있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랄프 커크 패트릭의 훌륭한 터치에 힘입어 아주 센치멘탈한 서정적인 느낌을 나름대로 펼쳐보이고 있다. 골드베르그 변주곡은 피아노든 쳄발로든 각 변주를 표현하기가 결코 쉬운 것이 아닌데, 그의 연주는 섬세함과 미묘한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그가 란도프스카의 “제1의 황태자이면서도 제1의 반항아”라고 평가받듯이 연주가 스승인 그녀와는 이질적으로 와 닿는데, 그는 철저히 터치를 중시 했던 것 때문이라고 한다. 그가 그려내는 골드베르그는 한 겨울의 오두막집에 놓여 있는 등불 처럼 따사로운 음악이다. 녹음년대상 그렇게 좋은 음질은 아니지만 감상에 방해가 될 정도는 아니다. 개인적인 견해이지만 헬무트 발햐의 그것과 더불어 쳄발로 연주에서 최고의 평가를 받아야 할곡이라고 생각된다. 들으면 들을수록 호감이 가는 곡이다.

③칼 리히터, 반다 란도프스카의 곡도 높게 평가되는 곡들이다. 애석하게도 아직 구해 듣지 못하여 참으로 안타깝다.

2)원전 쳄발로 연주

①구스타프 레온하르트/DHM/1976

구스타프 레온하르트는 1928년 5월 30일 네덜란드 태생의 쳄발리스트로 원전연주분야에서 명실상부한 대부로 군림하는 독보적인 존재 인데, 원전연주분야에서 그를 빼 놓고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레온하르트는 현재의 쳄발리스트 중에서 나이나 실력으로 보나 최고의 명성을 누리고 있는 음악가이다. 그의 연주는 실험적인 노력이 곳곳에서 감지되는데, 전세대의 거장인 헬무트 발햐나 랄프 커크 페트릭 등의 현대 쳄발로 연주와 현재 유행하는 원전 쳄발 연주를 잇는 과도기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고 본다. 따라서 그의 연주를 들어 보면 원전 연주이지만 일정한 한도에서 개량 쳄발로의 맛이 서려 있다. 그는 3번 이곡을 레코딩 하였다. 청년시절에 뱅가드(53년)에서 처음으로 녹음하였으며, 그뒤에 텔덱(65년)에서 다시 레코딩 하였으며, 마지막으로 DHM(79년)에서 세 번째 레코딩을 가졌다. 3개의 음반을 들어보면 음악을 풀어나가는 방식과 추구하는 방향에서는 그다지 편차가 발견되지는 않는다. 다만 나이를 먹어 감에 따라 더욱 엄정하고 정제된 방향으로 나아간 점이 뒤로 갈수록 심화된 느낌이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세상의 이치를 깨달은 구도자의 모습이 생각난다. 날카로운 쳄발로 음색들을 적재적소에 배합하여 대단히 단아하고 높은 정신성을 부여하고 있다. 곡의 진행에 있어서 그의 연주는 대비감을 통한 변화와 대조의 묘미 보다는 철저하리 만큼 곡의 자연스럽고 유유자적한 선율의 흐름을 중시하는 것 같은데 이점은 일반적인 쳄발리스트(특히 요즘의 젊은 연주자)와는 약간 다른 듯 하다. 또한 어느 연주자 보다도 감상자의 입장을 최대한 배려한 모습이 감지 된다. 이곡을 반복구를 다 넣어서 연주하면 70분대를 훌쩍 넘게 되는데, 인내심 많은 애호가도 지겨울수 있으니 말이다.(사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50분대의 cd가 음악 감상의 집중면에서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음색상으로 그의 연주를 보면 굴드의 연주태도를 쳄발로에 담은 듯한 느낌도 든다. 다만, 그는 레코딩을 굴드처럼 완결무결하게 하려고 노력은 하지 않는듯 하다. 제13번 변주의 시작부분의 음이 깨어지는 것을 그는 방치하고 있으니 말이다. 현역 최고의 쳄발리스트라는 말이 전혀 무색하지 않을 거성같은 존재이다. 그는 이 연주에서 최고의 음악성이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악기의 선택에 있어서 파르티타를 녹음할 때 사용한 악기로 한번 더 녹음했으면 하는 바램이든다. 굴드가 그렇듯이 그의 최고의 레코딩은 파르티타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제발 그악기로 한번 더 녹음하기를 간절히 바랄뿐이다.

②피에르 앙타이/OPUS/1992

그의 연주는 음색의 풍요로움이 남다르다. 이는 그가 선택한 악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또한 쳄발로의 사각거리는 미세한 잔향까지도 생생하게 포착한 레코딩상의 기법에 대해서도 칭찬을 하고 싶다. 통상 쳄발로라는 악기의 날카로운 음색은 음악감상을 가로막을 요소로 작용할수도 있는데, 피에르 앙타이의 연주는 그러한 걱정을 괜한 기우로 떨쳐버릴 아주 매력적인 음악이다. 이러한 탓에 초심자들에게 적극 권장할만한 곡이라고 본다. 프랑스 출신의 음악가 답게 부드럽고 유려한 선율미를 앞세워 연주해 나간다. 다만 곡전체를 아우르는 음악적인 응집력은 스승인 레온하르트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는 듯하며 전시대 선배들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나름 대로 음악을 열정적으로 풀어 나가는 모습은 훌륭하다. 그가 비교적 젊은 40대 인점을 생각하면 그의 음악적인 특징은 이해가 간다. 나이가 들어 성숙해질 그의 모습에 기대가 간다. 여름에 가장 어울리는 시원스런 음악이다. 차랑차랑한 배음처리가 파도소리처럼 귓전을 맴돈다.

③그밖에 케네스 길버트, 스코트 로스 등의 음악도 훌륭하다. 다만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의 연주는 너무 기교적인 느낌이 많이든다. 특히 장식음 운용이 좀 지나치다고 생각되는 경우가 많은것도 사실이다. 일반적으로 바로크시대에는 즉흥적인 장식음의 사용이 폭넓게 이루어 졌다고 하지만, 이러한것도 연주자의 재량사항임을 감안하여 해석이 행하여 져야 할터인데 요즘의 연주는 거의 의무 사항처럼 받아 들여지는 듯 하다. 또한 장식음의 부가가 가능하다면 역의 논리로 안붙이는 것도 바로크음악의 자유스런 곡운용의 연장선에 있는 것이 아닐까? 문제는 바로크 음악이 지향하는 미학과 곡의 형평성을 얼마나 잘 안배하여 표현하는가가 문제의 핵심이라고 본다.

3.편곡연주

기타 편곡연주, 오르간 편곡연주등이 있으며, 캐나디안 브라스의 편곡연주도 있다. 더 나아가 현악 앙상블이나 실내악 편곡 연주까지 존재한다. 특히 캐나디안 브라스의 연주는 해학미가 일품이다. 금관악기처럼 비교적 투박하고 두툼하며 톤이 큰 음색으로는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그들은 능청스러울 만큼 잘 연주한다. 거기다가 변주간의 통일성과 강약조절등도 적절히 구사하여 악기의 한계를 뛰어넘는 호소력을 준다. 글쓴이는 편곡연주를 많이 듣지는 못했지만 캐나디언 브라스의 연주는 편곡연주의 묘미가 무언지 여실히 드러내주는 일대 사건으로 보고 싶다. 정말이지 캐나다인들의 바흐는 어떤식으로 든 기발했으며, 종래의 관행을 웃기듯이 뒤집는 재미를 많이 보여 주었는데, 캐나디언 브라스도 그런 호기심과 진취적 정신으로 똘똘 뭉친 연주자 들이다. 그들의 연주는 천재적이고 짧은 생애를 산 글렌굴드 혹은 스코트 로스나 명상적인 바흐를 들려준 로잘린 투렉이 이룩한 바흐정신의 연장선에 놓여있다는 생각이 든다.

Ⅷ.글을 맺으며

바흐는 사실 살아 생전에 누린 영광보다도 죽어서 오히려 그의 위업이 신의 반열(특히 바이올리니스트 예후디 메뉴인은 바흐를 음악의 예수라고 까지 말함)에 이를 정도로 칭송이 자자한 케이스이다. 그의 사후에 얼마간 잊혀진 존재가 되었다가 여러 낭만파 음악가들의 ‘바흐로 돌아가자’는 구호가 있은 이래로 지금은 서양음악에서 최고봉으로 자리 매김 하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면 우리나라의 다산 선생이 생각난다. 살아 생전 불우한 일생을 쓸쓸히 보냈지만 그가 죽은 한참 후인 지금도 많은이의 가슴에 그가 생생히 남아 있으니 말이다. 정다산 선생에 대한 이 현상 역시 글쓰이는 바흐 현상에 빗대어 보고 싶다. 바흐의 등뒤에 가렸던 바흐의 동시대인 텔레만(Georg Philipp Telemann, 1681∼1767)같은 작곡가는 바흐에게 헌정한 글에서 "바흐여, 그대의 이름은 제자들과 그들이 보관한 악보를 통해 모든 망각으로 부터 구출되어 살아 남을지니, 그들은 당신에게 보다 드높은 영예의 왕관을 씌워 주리라....." 라고 쓰고 있는데, 텔레만의 발언은 바흐음악의 현대적 의미와 무궁무진한 생명력과 바흐의 위대성을 인식함에 많은 의미심장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 바흐가 우리의 가슴에 끊임없이 살아 숨쉬는 (서양)음악의 아버지임을 정확히 예견한 선견지명에 가까운 찬사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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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주소에서 같은 글 실어 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