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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니홍조]를 일깨우는 음악, 푸가의 예술(BWV1080)

*** 게시판에 올라왔던 BACH2138님의 글입니다. ***

ㅡ 심원한 깊이와 고도의 양식을 자랑하는 종생(終生)의 음악 ㅡ


Ⅰ.푸가의 예술에 대한 서

바흐음악의 최후를 관통하는 이 미스테리같은 음악을 접할때면 언제나 여러느낌이 교차한다. 곡자체에 내포하고있는 많은 논란들은 말할것도없고 음악이 가져다주는 구체화된 모습이 어떨지도 엄청나게 호기심을 자아내게 하는데, 지금까지의 연주성과를 보면 어느정도의 가닥이 잡힌다고도 할수있을 것이다. 제일 오른쪽의 오르간부터 쳄발로, 피아노를 거쳐 현악사중주,기악합주, 심지어는 관악앙상블까지 이곡에 도전을 하고 있다. 또한 나름대로 훌륭히 연주되어 어느악기로 연주하는 것이 이곡의 원래의 모습인지에 대해서도 악기지정이 없는 이곡을 더욱더 미궁에 빠뜨리게도 한다. 글쓴이는 구체적으로 대위선율이 어떤지 푸가가 어떤지는 정확히 알지못한다. 악기를 다루지 못하는 까닭에 연주를 통한 체득도 하지못하고 있다. 그냥 음악감상을 통해 추상적으로 혹은 느낌으로 알정도이다. 사실 비음악학도가 깊은 음악이론을 안다는 것 자체가 의문일수 있을것이다. 이는 마치 비법학도에게 난해한 법서를 한번 보고 이해하라고 하는것과 마찬가지인것 같다. 글쓴이와 같이 바흐를 좋아하는 이들은 잘 알 것이다. 바흐가 그냥 좋다. 그 이유가 뭔지 자문해보아도 그렇게 큰이유는 없는 것 같다. 글쓴이가 바흐를 듣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많이 관심을 가지고 듣은 분야는 세속 기악음악들이다. 특히나 “푸가의 예술”과 같이 악기 지정도 없고 미완성의 작품이라는 부분은 글쓴이와 같은 비음악학도 들에게 조차도 많은 이니셔티브를 제공할것이다. 연주자들은 저마다 자신이 불어넣은 해석을 이곡의 본원적인 모습으로 각인시키기 위해 노력해왔다. 불가지론적이고 무한하여 그 해석방향을 가늠할수 없을 것 같은 이 푸가의 예술도 바흐음악자체가 가지는 특성과 무관하지 않지만, 적어도 현상으로서의 이 푸가의예술에 대한 집착들은 많은 생각을 하게끔한다. 발햐의 오르간 연주나 구스타프 레온하르트 다비드 모로니등의 쳄발로 연주나 피아노연주, 현악사중주 연주들, 나아가 가장 반오르간적이고 반피아노적인 굴드의 연주등등을 듣다보면 모두가 제각각 훌륭하다는 사실을 알수있을것이다. 여타의 바흐음악도 여러악기로 편곡되어서 연주되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원곡을 능가할 수는 없는데, 이 푸가의예술에 이르면 양상이 달라진다고 보여진다. 제각기 다른악기로 연주된 심도높은 연주들이 각각 대체 존립가능한 위치를 누릴수 있는데, 연주간에 양립가능성을 가진다고 본다.

Ⅱ.설니홍조를 느끼게 하는 선율

설니홍조(雪泥鴻爪)란 말뜻그대로 하면 “눈 진흙위의 기러기 발자국”이란 말이며, 눈 위에 기러기의 발자국이 눈이 녹은 뒤에는 없어진다는 의미를 지니는데, “인생의 자취가 덧없고 삶이 무상함“ 을 일컫는말로 사용된다. 이 말은 중국 송대문학의 최고봉을 이룩한, 당송8대가1) 의 한명인 소식(1037~1101/스스로를 동파거사라 불렀으며, 자는자첨)이 사용한 유명한 비유로서 이후에는 4자성어가 되었다. 그의 문학작품은 호방함과 철학적인 심오함을 담고있다고 평가받는데, 특히 그의 문학작품은 비유가 풍부하고 운치감이 뛰어나다. 글쓴이가 이 푸가의 예술을 들으며 전달받은 느낌은 종생(終生)을 기다리는 이의 삶의 무상감과 회한의 정서이다. 알 듯 모를 듯 희미한 음영만이 뇌리를 감싸는 무심한 선율들, 어찌보면 음표의 대칭적 관념적 배열이라고 생각되는 음들의 수학적인 향연, 생의 최후를 추단케하는 끊임없는 생각을 불러오는 상념등이 이 푸가의 예술을 특징지우며, 또한 그것이 이곡을 바흐음악중에서도 가장 심오하고 매력적인 음악으로 만드는 이유를 제공할 것이다. 이곡을 순음악적으로 바라보면 노대가가 관조하는 자신의 삶에 대한 자아성찰적 서사시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거대한 푸가변주곡에 불어넣은 무상감과 회한의 감정은 소동파가 비유한 설니홍조와 멎지게 매치된다고 생각된다. 이 4자성어와 관련된 그의 시한편이 있다.

人生到處知何似(인생도처지하사)
應似飛鴻踏雪泥(응사비홍답설니)
泥上偶然留指爪(니상우연유지조)
鴻飛那復計東西(홍비나복계동서)
老僧已死成新塔(노승이사성신탑)
壞壁無由見舊題(괴벽무유견구제)
往日崎嶇還記否(왕일기구환기부)?
路長人困蹇驢嘶(노장인곤건려시)

사람의 삶이 도처에 무엇과 유사한지 알도리가 없다.

마땅히 나르는 기러기가 눈에 덮힌 진흙을 밟는것과 같으리라.

진흙위에 우연히 발톱자국을 남기지만,

기러기가 날아가면 어떻게 동서를 헤아릴수 있겠는가?

(몇년전 이 면지를 지날 때 환대를 해주던) 늙은 스님은 이미 죽어 새로운 탑이 되었는데,

허물어진 벽은 옛날 시를 지어 붙여 놓았던 것을 볼도리가 없다.

지난날 험준한 길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가?

길은 멀고 사람은 지치고 절름발이 나귀는 울었던 것을.......


이시는 동생 소철(자가 자유)과 과거보러 가는길을 회상하면서 동생글에 화답한 시[제목:和子由면(삼수변에 맹꽁이 맹)池懷舊]2) 로 아련한 옛일을 회상하게 하며, 인생사 무상함을 담고 있는 시이다. 소식은 이 시에서 그당시 느꼈던 삶에 대한 본원적인 향수와 회한의 정서를 표출하고 있다. 인생무상과 회한의 정서는 다른 예술가들의 예술, 더 나아가 음악가들(예컨대, 베토벤의 후기음악들)의 후기음악에서도 매우 진솔하게 표출되는데, 특히 이 바흐의 푸가의 예술에서는 푸가라는 고도의 예술과 합치되어 보다 높은 품격의 그것을 보여준다고 생각된다. 다만, 바흐가 부여하는 이러한 무상감과 회한의 감정은 단순히 과거에 향하여져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로의 가치지향을 분출시키는 점이 그의 음악을 더욱더 위대하게 만든다고 보여진다. “ 나도 인생을 나름대로 열심히 살아 보았지만, 너무나 짧는 것 같다. 여러분 후배들도 열심히 살아라! 살아보니 별것 아니지만, 그래도 할만큼은 했다. 그런데 이제야 삶의 도를 깨칠려니 하늘이 나를 기다려 주니 않는구나!” 라고 바흐가 우리들에게 던져주는 마지막 멧세지 같다는 느낌이 이 푸가의 예술울 들을때마다 전해진다.

Ⅲ.푸가의 예술에 대한 몇가지 생각들

1.연주악기/순서배열에 관하여

먼저 사용악기에 대해서 함지환 선생님(음악 동아리 아름드리의)이 쓰신 글에서 지적하셨듯이 여러 음악인들이 오르간, 쳄발로, 혹은 오케스트라형태를 기본이라고 나름대로 주장하여 왔던모양이다. 글쓴이 개인적인 느낌으로는 가장 중립적이고 객관적느낌을 부여하는 쳄발로가 본원적 형태라는 레온하르트의 견해 3)가 타당하다고 본다. 다만 이것은 최후의 한악기를 선택하라는 전제하에서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견해에 결과론적으로 동조하는데 불과하다. 서두에서 잠깐 운을 띠운 것처럼 여러악기로 연주되는 음악이 이렇게 균등하게 와 닿고 저마다 음악적 자태를 자랑하는 현상으로서의 푸가 변주곡을 귀납적으로 바라보면 악기 무지정을 있는그대로 받아들여, 연주가능한 악기면 모두 곡에 맞춰 연주해보라는 바흐의 의사가 악기 무지정 속에 반영된 것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생각해본다.

연주자들은 각기 이곡을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순서를 약간씩 다르게 배열하거나 혹은 일부곡을 제외하여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은데, 글쓴이 생각으로는 이러한 해석상의 상이점이야 말로 정당한 바흐음악의 특징을 웅변적으로 표출하는 것으로 본다. 실제로 음악연구가들은 몇몇 판본을 제시하고 있기도하다. 물론 서로다른 판본의존재나 연주자들의 다른운용은 바흐음악자체의 무정형적인 불가해한 성격과도 맞닿는데, 바흐에 이르면 천편일률적인 해석보다는 개인의 참신한 해석이 훨씬 설득력을 주는 경우가 많음을 본다. 이 푸가의 예술은 더욱더 연주자의 창의성과 영감을 허용하는 투명성의 극치를 느낄 수 있는 그런 음악이라고 생각된다.

2.음반에 대한 접근방법

글쓴이 생각으로는 여러다른악기의 운용과 그에따른 전달상의 차이는 그렇게 궁국적인 것은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이 난해한 음악(인간감정의 표출이라는 낭만주의적 음악을 염두에 둔다면 이 푸가의 예술은 수학공식을 기계적으로 대입한 반음악적인 음악이 될 수도 있을것이다.)을 쉽게 접근하는 방법은 애호하는 악기취향에 따르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것같다. 자신이 좋아하는 악기의 연주버전을 먼저 들어서 머릿속에 선율을 어느정도 각인시킨 다음에 악기의 폭을 넓혀서 감상을 병행한다면 이작품의 속성을 더 깊히 이해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따라서 피아노든 쳄발로든 오르간이든 아니면 실내악이든 오케스트라형태이든 듣는이가 선호하는 악기부터 듣기시작하는게 가장 좋은 것 같다. 다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이곡의 여러 정황상 독주악기형태의 버전이나 가장 간소화시킨 현악4중주 형태의 버전이 바흐말기의 음악적 정서를 가장 섬세하고 심도높게 표현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아래그림4)은 콘트라푼크투스 12의 악보로 rectus(위)와 inversus(아래)를 도상학적으로 비교해놓은 것이다. 콘트라푼크투스 12는 4성 거울 푸가로, 곡 rectus가 끝난 다음에는 악보가 거울에 대칭된 듯 다시 완전히 뒤집혀진 형태인 inversus로 연주되게 되어있다.


Ⅳ.푸가의 예술에 관한 음반목록(www.jsbach.org를 참조하였음)

푸가의 예술에 대한 음반상황을 보면 여러장르에서 60여종이 넘는 상당한 분량이 레코딩된 것을 알수있는데, 국내에 소개된 음반은 이에 비해 무척 적은 분량에 해당한다. 음반현황을 글쓴이가 나름대로 정리해보았다. 또한 적은양이지만 소장하고있는음반에 대해서 나름대로 간단한 리뷰를 달아 보았다. 좀더 많은 서로 다른음반을 듣는게 나의목표이기는 하지만 현실의 음반사정(수급사정)은 그렇지 못한 것 같다. 아래에서 글쓴이가 느낀 음반에 대한 생각은 전적으로 글쓴이의 독창적인 사고에 기인한 것이다. 따라서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필자와 다르게 생각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본다. 그분들의 견해도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것이다. 그리고 글쓴이의 비판에 함몰된것 같은 저명한 음악인들의 연주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먼저 양해를 구해야 할것같다. 음악의 기본이론도 잘 알지못하고 또한 악기를 다룰줄 모르는 글쓴이의 생각이 어쩌하면 성급하고 경솔한것인지도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면, 음악에 대한 판단은 궁국적으로 음악감상자 개개인들이 판단할 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국내음악인들도 이곡에 도전하여 레코딩을 남겼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1. 쳄발로

푸가의 예술(기법)연주를 둘러싼 여러논쟁중의 하나인 악기의 선택문제는 최근들어 약간 정리되는 추세인 것같다. 여러 레코딩을 듣다보면 악기의 중요성 보다는 연주자가 어떻게 바라보고 어떻게 해석하는 것이 바람직한가의 문제로 중점이 옮겨진듯한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실제로도 만약 그러하다면 이것은 비교적 바람직한 현상일 것이다. 그럼에도 최고로 적합한 한 악기하나를 고르라면, 글쓴이는 쳄발로를 선택하겠다. 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음악자체 관점에서의 논증은 별론으로 하고 개인적으로 감상자적인 입장에서 이곡을 바라보건데 쳄발로가 가장 나을 것 같다. 오르간처럼 종교적 맛이 풍기는 악기는 다소 이곡을 지나치게 과장하는 측면이 있는것 같아서 무색투명한 이 푸가의 예술에 최상의 조건을 충족시킬수는 없을 것 같다. 그리고 성부간에 구분이 모호해지는 악기자체의 한계성도 역기능을 한다고 본다. 그리고 현악사중주 형태의 연주는 나름대로 따스하고 독실한 뉘앙스를 주는 잇점을 지니는 반면 곡 전체의 통일성이라는 측면에서 독주악기 연주를 따르기엔 약간 뒤쳐지는 것 같다. 이에 반해 쳄발로는 가장 객관적이고 가장 섬세한 표현을 하는 악기여서 비교적 단점이 적은 연주를 들려주는 것 같다. 요컨대 쳄발로는 가장 실패할 확률이 적은 악기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①길버트(Kenneth Gilbert) / Archiv

②레온하르트

ⅰ) Vanguard판(1953년 녹음) @

레온하르트의 53년 레코딩은 20중반의 젊은시절의 음악적 방향을 가늠할수 있는데, 어린시절에서도 그의 연주에서는 범접하기어려운 무겁고 진지한 태도를 감지할 수 있다. 선율을 극히 명쾌히 각인시키는 그의 조심스럽고 섬세한 터치는 너무도 성숙한 자태이다. 그의 음악을 듣노라면 레코딩을 자신의 음악을 표현하는 수단으로 전적으로 의존하지 않는 의연함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태도는 이후의 여러 레코딩에서도 감지된다. 될성 부른인재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도저히 20대의 연주라기에는 음악을 이해하고 풀어나가는 방식이 너무나 성숙하다고 보여진다. 20대부터 이토록 초절했던것을 보면 지금의 원전음악의 대부라는 칭호가 그냥 얻어졌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푸가의 예술연주는 엄정함과 야성같은 단호함이 서리발처럼 녹여져 있다. 이곡의 폭넓은 이해와 감상을 위해서는 반드시 들어봄직한 연주라고 생각된다. 그의 쳄발로연주에서의 위치는 과거세대인 반다 란도프스카, 헬무트 발햐, 랄프 커크 패트릭등의 개량쳄발로 명인과 현대의 젊은 원전연주자를 잇는 교량역할을 수행해 왔다는 느낌을 받는다. 따라서 그의 음악에서는 과거세대의 엄정함 명괘한 선율선을 강조하는 특색과 현대 원전연주자들의 차랑차랑하게 음악을 풍성하게 처리하는 방식을 동시에 느낄수 있다. 또한 그의 쳄발로에서의 초절함은 다름 아니라 쳄발로같이 객관적인 맛을 갖는 악기 그자체의 기능적 한계를 뛰어넘는 감정처리의 탁월함에 있는것같다. 어떤연주자 보다도 엄정함과 낭만성을 조화 시키느데 천부적인 몇안되는 쳄발로의 최고봉이라고 생각된다.

ⅱ) DHM판(봅 반 아스페린이 제12,18번 함께연주)

③모로니 (Harmonia Mundi) @ *

그가 그려내는 푸가의 예술은 안정적인 곡의 운용이 돋보인다. 템포도 적절한 중용을 유지하고 있으며, 쳄발로의 음색도 비교적 온화한편에 속한다. 음색이 날카롭다든지 부담스런 기교도 여기서 보이지 않는다. 덤덤하게 곡을 꾸려가는 독실함이 감지된다. 이 연주에서 가장 눈에 뛰는 것은 마지막의 미완성 푸가를 제16번에 배치하고 다시 종곡으로 미완성 푸가를 자신이 나름대로 완성하여 끝을 보게하고 있다. 이점은 상당히 독창적이며 매우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묵직한 아티큘레이션과 미묘한 떨림은 뇌리에 깊숙이 남게한다. 그의 연주는 과거 세대의 같은 명인과 현재 원전 연주세대의 좋은점을 취합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그의 연주에는 엄정함과 더불어 원전연주의 부드러운 묘미를 느낄 수 있다. 최근의 레코딩 가운데서 쳄발로연주의 아름다움과 평온한 느낌을 전달하는 음반으로 높이 평가 받아야할 연주라고 생각된다.

④Robert Hill[Michael Behringer (in mirror fugues)]/Hanssler
⑤Ton Koopman(and Tini Mathot, harpsichords) - 에라토

2. 오르간

푸가의 예술을 오르간으로 연주하는것도 연주자들이나 감상자들한테 상당히 많은 영향을 끼쳐왔던 것을 알 수 있다. 악기자체가 표출하는 강력한 흡인력은 오르간만이 간직하느 매력중에 하나일 것이다. 이를 입증하듯 비교적 많은 레코딩들이 존재한다. 다만 국내에 소개된 음반은 무척 적은 것이 또한 사실이다.

①글렌 굴드(Sony) : 일부만 레코딩 @ *

굴드의 의도가 도저히 뭔지 알수 없지만 오르간으로 연주한 그의 이 푸가의 예술 연주를 들어보면 레가토를 가장 본질적인 속성으로하는 오르간이라는 악기를 그렇게 고려하지 않고 있는것 같다. 이른바 가장 반오르간적으로 오르간을 연주하고 있는셈인데, 글쓴이가 생각으로는 레가토로는 복잡한 성부를 명쾌하게 들려주지 못한다는 외적인 문제의식과 곡상을 강건하고 도전적이게 하여 곡을 더욱 더 개성적으로 보이게 할 내면적인 인식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오르간에 대한 통상의 관념을 초과하기 때문에 그의 연주는 감상자를 혼란스럽고 부담스럽게 할 여지가 많다. 그러나 듣기에 따라서는 해석의 묘미를 무한히 끌어올수도 있을 것이다. 이곡을 악기지정이 없는 중립적인 곡으로 상정한다면 오르간을 사용하더라도 굴드식의 반오르간적인 연주는 나름대로 이해할수 있으니 말이다. 이음반에서 느껴지는 느낌은 대단히 강건하고 향학열에 불타는 도전정신이라 생각된다. 함지환님의 글에서 “7곡부터는 저절로 마치 대운동장에서 응원하는 단장의 모습이 자동으로 나오고요.............” 라고 이곡을 평가하고 있는데, 궁국적으로 글쓴이의 생각과 대동소이하다. 이연주에서 아쉬움으로 남는부분은 전곡을 왜 남기지 않았나 하는 점이다. 곡은 전반적으로 템포가 약간 빠른편이고 각 곡간의 속도도 일정하게 잡혀있다.

②볼프강 뤼브잠(Wolfgang Rubsam) / Naxos
③발햐 (Archiv) @ *

발햐가 연주하는 푸가의 예술 연주는 오르간 분야에서는 지금까지 정평이 나있다. 글쓴이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아도 그의 음반는 독보적인 연주라고 생각한다. 이 곡집에 도전한 오르간 주자는 저마다 영감을 가지고 이 거대한 곡집에 도전하고 있다. 발햐의 연주는 그의 쳄발로 연주와 마찬가지로 순수하고 투명한 느낌을 주며 장엄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오르간 연주에서도 다른 건반악기연주와 마찬가지로 연주상 2가지의 서로 다른 방향의 대립하는 위험이 상존한다. 하나는 연주를 통해 곡이 너무 상투적으로 흐를 소지가 있다는 점이며, 둘은 정반대로 곡에 대한 과도한 감정 이입이 자칫 곡을 천박하게 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발햐는 이러한 문제점들을 직시한듯 이 곡집을 상투적으로 처리하지도 않고 지나친 감정이입에 얽매이지도 않은 중용의 자세로 연주하고 있는것 같다. 최고의 대가 답게 이 무심한듯한 곡들을 자신만의 색채로 무한히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다. 맹인 연주가 답게 암보를 바탕으로, 곡에 대한 확고한 장악력과 내적 영감의 발현이 단연코 연주를 드높이고 있다. 좀처럼 실패한 연주를 남기지 않는 그의 연주상의 불세출의 능력은 결코 우연에서 오는것이 아님을 실감 할수 있을것이다. 연주에 있어서 그의 성공은 일반인은 도저히 따를 수 없는 뛰어난 삶의 관조에 있다고 본다. 발햐는 현재의 젊은 연주자들이 오류를 범하는 바흐에의 접근 방법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민을 하게끔하는 음악가 일것이다. 장식음과 기교적인 접근이 아니라 심화된 내적통찰을 통하여 체득한 심혼의 선율을 그는 우리들에게 들려주고 있다. 바흐 음악의 구체화가 어떤것인가를 몸소 실천하는 연주자로 경외할 만한 사람인것 같다. 오래 반복해서 바흐를 듣다 보면 음악의 선명화에 비례하여 그결점 (물론 그결점은 나쁜 음질이나 미스터치 라기보다는 곡상을 경박하게 하는, 반드시 사려깊다고 볼수는 없는 외형적 가식에 기인한 경우가 많다고 봄)도 커지는 법인데, 발햐에 이르면 그런 걱정은 접어도 될것 같다. 간결하고 가식없는 숭고한 연주이어서 무한정 듣고 느낄수있는 장편의 서사시같은 그런 음악이다.

④알랭(Marie-Claire Alain) / Erato
⑤Michael Ferguson( Minnesota Public Radio)
⑥Paul Jordan(Brioso)
⑦Kei Koito(Temperaments)
⑧Bernard Lagace(Analekta)
⑨Herbert Tachezi(Teldec)
⑩Ville Urponen(MILS)
⑪Hakan Wikman(Finlandia Records)
⑫Henk van Zonneveld(WISP) / 오르간, 쳄발로

3. 피아노

피아노로 연주하는 푸가의 예술연주는 정말이지 많은 아쉬움을 남게한다. 바흐 피아노의대가들 예컨대 빌헬름켐프나 호르쇼브스키등이 음악에 도전하지 않았다는 것은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물론 글렌굴드가 일부를 녹음했지만 전곡이 남겨지지 않은 것은 그의 요절과도 맞닿을 것이다. 음반목록을 살펴보면 피아노버젼으로 어느정도의 레코딩이 존재함을 알수있지만 국내에 소개된음반은 그중에서도 적은숫자라 할것이다. 피아노라는 악기는 푸가의예술이라는 음악과 가장 이질적으로 느껴지지만 현대적인 맛을 조명하는데는 피아도 일조하고 있으며, 특히 어려운 대위선율을 명확히 각인시켜준다는 점에서 피아노는 음악감상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이유에서 글쓴이는 피아노버젼을 나름대로 높이평가하는 바이다. 다만 그러한 비중있는 역할론에도 불구하고 기 녹음된 피아노 연주들의 음악적 완성도는 몇몇을 제외하고는 반드시 높다고 할 수는 없다고 본다. 좀더 많은 피아니스트들이 자신감과 영감을 가지고 이곡에 도전해 보았으면 하는 바램이 든다.

①니콜라예바(Hyperion)

니콜라예바는 투렉과 함께 거론되는 뛰어난 여류음악인으로써 바흐음악에서 비중이 큰피아니스트중의 한명이었다. 그의 음색은 영감에 차 있으며 부드러운 음조가 특징이라 할수있을 것이다. 그녀의 레코딩중에서 특히 2성3성인벤션과 평균율은 비교적 훌륭한 평가를 받고 있기도하다. 그녀가 그려내는 피아노에서는 모성애를 자극하는 듯한 유미로운 정감을 곳곳에 발견할 수 있다. 다만 몽롱한 피아노음색은 일말의 아쉬움으로 남는다. 지속음을 견지하면서도 순수하고 왜곡되지 않은 음조를 내보이는 켐프의 연주와 대비되는데, 이점은 니콜라예바 연주의 최고의 단점으로 보고 싶다. 이 푸가의 예술 연주에 있어서도 음색이 약간 몽환적인 뉘앙스를 풍겨서 다소 아쉽다. 그럼에도 이 음반은 피아노로 연주된 음반 가운데서도 많은이의 호평을 받는다. 그 이유는 음악을 꾸려나가는 그녀의 독실한 신념과 이에 의해 표출되는 음악의 경건성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음악구성이 매우 치밀하고 건축적인 느낌을 주는것도 이음반의 매력이라고 본다. 국내외적으로 많은 지지를 받는 연주이다.

②Griegory Sokolov(Opus III) @

소콜로프의 연주는 피아노연주시 스타카토와 음향상의 울림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음색의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다. 또한 몇몇 콘트라풍크투스는 아주 느린 음조를 들려준다. 사색적이고 명상적인 맛이 활발한 터치속에서 표출되고 있다. 섬세한 표현을 하는 부분이 있는가하면 대담하게 접근하는 부분도 있다. 많은경우 글렌굴드와 니콜라예바의 접점에 위치한 연주를 들려준다. 연주의 외형적인 면은 굴드의 모습을 연상시키지만, 저음부를 강조한 선율진행(제1번,미완성푸가등)과 영감을 불어넣으려는 신중함은 니콜라예바를 연상시킨다. 푸가의 예술이 발산하는 숭고성과 진중함은 어떤악기로 연주하든 어떤연주자가 해석하든 단순하고 순수한 접근을 기본적으로 요한다고 본다. 삶의 종기에 이르면 이를수록 무엇이든 정리하고 줄여나가는 일반적 상황을 감안할 때, 이 종생의 음악인 푸가곡을 영감에찬 서정미로 표현하는것도 뜻있는 일이라 생각된다. 요컨대 소콜로프의 푸가의 예술연주는 서정미와 영감을 나름대로 강조한 감미로운 연주(찰스로젠의 연주와는 대척점에 놓인 느낌)라고 본다. 이 음반의 단점이라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음색이 몽롱하게 잡혀져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된다.


③Zoltan Kocsis(코치스)[with Ferenc Rados (Contrapunctus 12-14, 19)] - Philips

④글렌 굴드(Sony): 일부만 레코딩 @ *

굴드의 연주가 늘상(거의모두) 그러하겠지만, 그의 푸가의 예술 피아노연주는 굴드자신의 바흐 레코딩중에서도 가장 반피아노적이라고 할수있을 것(골드베르크 변주곡 레코딩도 여기에 비하면 약과라고 생각됨)이다. 제1번 contrapunctus와 미완성 contrapunctus에서는 이게 도대체 피아노인가 할 정도로 악기의 효과를 거의 거스르는 뉘앙스(이점이 감상자에 따라서는 매우 역겨울수도 있을것)를 주는데 거기다가 허밍같은 흥얼거림은 너무나도 커서 오히려 노래를 읊조리는 것같다. 반면 제2,4,9,11,13,14번contrapunctus들은 쳄발로음색을 지향하는 그의 피아니즘을 더욱더 표출시키고 있으며 매우 도전적이고 강렬한 느낌을 준다. 그의 해석이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 역시 논란이 있을수 있으나 그의 연주에서 느껴지는 고독과 외로움에 몸부림치는 회한의 정서는 머리털이 꼿꼿이 설 정도로 전율적이다. 푸가의 예술을 전곡은 아니지만 이렇게 낭만적으로 구체화 시킨 연주(물론 이음반에 대해서도 해석의 범주를 넘어선 창조라는 식의 비판을 받을여지는 다분히 있을것이다.)는 당분간 없을 것 같다. 어쨌던 굴드는 피아노라는 악기를 쳄발로같은 고악기를 염두에 두고 얽힌 실타래 풀 듯 바흐를 풀어나가는 비상한 통찰력을 지닌 연주자 인점은 틀림없는 것 같다.

⑤찰스 로젠(Sony) @ *

찰스 로젠의 푸가의 예술 연주는 피아노연주로써 글쓴이가 들은것중에서 가장 설득력이 있는연주라고 생각된다. 물론 글쓴이가 들은 피아노음반이 다소 적어서 추가적인 호오(好惡)판단의 여지가 남게 될것이지만, 찰스로젠의 연주는 상당히 심도높은 연주로 평가되어야 할것으로본다. 사실 이곡과 피아노라는 악기는 그다지 어울릴 것 같지 않다. 음을 길게 늘여뜨리는 부분이 많고, 곡자체의 성격상 피아니스틱한 연주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피아노연주는 여느 바흐곡들처럼 실패할 확률이 매우 높은것같다. 그런데 이연주가 주는 매력으로는 음색을 철저히 덤덤하게 처리하는 부분이다. 이점에 매우 큰점수를 주고 싶다. 피아노음반의 경우 최근의 녹음들이 가장 취약한 부분은 다름아니라 음색을 몽롱하게 처리하는것에 있다고 보여진다. 연주자의 해석의 독창성은 별논으로하고 그러한 태도는 신비주의(OCCULTISM)에 지나치게 의존한게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갖게한다. 바흐 클라비어곡은 본질적으로 피아노와는 그렇게 궁합이 잘 맞는다고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굴드나 켐프같은 명인들이 넌레가토와 레가토의 방식으로 각각 도전하여 피아노의 운신의 폭을 넓혀놓은 것은 피아노 연주사에 깊이 남아있지만, 어느 피아니스트나 다 그런 경지에 도달할수있는 것은 아닌성싶다. 피아노로 연주를 잘하려면 엄정한측면과 낭만성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양립불가한 것을 동시에 요구하는 것 처럼 매우 어려운 것 같다. 잘못하면 음악이 넘쳐흘러 도저히 듣기 거북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두번째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녹음시의 음향에대한 고려의 문제(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약간 건조한 느낌을 주는 녹음이 피아노의 경우는 오히려 설득력을 준다고 봄)이다. 이것은 굴드식의 연주이든 켐프식의 연주이든 다 같이 적용되는것으로 피아노로 설득력을 줄려면 실연을 듣는 것 같이 녹음될 필요가 있다. 그다음으로 즉흥적인 장식음(굴드는 오히려 장식음을 절제하는경우도 많이 보이며, 사용하더라도 그는 장식음을 주선율선으로 대체하려는 치밀한 의도하에서 접근하는 것같다.)은 정말 절제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모든 바로크음악에 걸쳐 그러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서릿발같은 진중함을 담고있는 이 곡의 특성상 그러한 장식음들은 사족을 넘어선 곡상을 훼손하는 이끼같은 존재일수 있다고 본다. 쳄발로같은 경우도 역시 그러하겠지만 피아노는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이음반이 주는 매력을 하나더 꼽으라면 cd 구성이다. cd1은 투렉의 주옥같은 소품들이 수록되어있다. cd2에 바로 찰스로젠의 이 푸가의예술 연주가 배치되어 있다.

⑥Evgeni Koroliov(Tacet) @

예프게니 코로리요프의 음악은 굴드의 해석에 많은 영향을 받은것같다. 특히 제1번 및 4번 콘트라풍크투스와 마지막 미완성 푸가연주를 들으면 굴드의 연주와 유사성을 느낄 수 있다. 다만 전반적으로 굴드보다 더욱 피아노 자체의 측면을 부각한 연주를 들려주는것이 외관상 다른점이라고 본다. 그가 그려내는 푸가의 예술은 곡전체를 그렇게 과장하지 않으며 또한 구태의연함도 없는,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는 상큼한 연주이다. 다만 이곡에서 듣기 부담스런 부분은 콘트라풍크투스의 다른악보의 마지막곡 2곡을 추가적으로 배치한 것이다. 이러한 추가는 곡의 흐름상 공연한 사족이 되는 것 같아서 아쉽다. 특히 이들 녹음부분에서는 음향상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차라리 부가하지 않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괜히 추가하여 cd분량을 2개로 늘려서 풀 프라스로 하려는 지나친 상업주의 아닌가하는 의구심을 남게하는 부분이다. 또 하나 이음반의 단점을 지적하자면 전혀 의도하지않은 몇몇 부분에서의 완곡한 표현이 곡의 형평성을 파괴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 같다. 어쨌든 코로리요프의 이연주는전체적으로 음악을 풀어나가는 조형감과 구체화가 찰스로젠의 그것에 필적하지 않나 생각한다. 피아노연주 음반중에서 비교적 추천하고 싶은 음반이다.

⑦Alexander.Daykin(Connoisseur Society):Frank Daykin and Millette Alexander, piano duo(피아노 듀오)
⑧Peter Elyakim Taussig(Crystal Music)
⑨Vladimir Feltsman(Music Masters)

4. 현악 4중주

①줄리어드 현악 4중주단(Sony) 1987년 녹음
②파올로 보로치아니 외 / 현악 사중주(Nuova Era)
③Quartetto Bernini (Amiata)
④The Delme.Quartet (Hyperion)
⑤Keller.Quartett (ECM New Series)

5.관악 앙상블

①Amherst Saxophone Quartet(MCA Classic) / 섹스폰 4중주
②Berliner Saxophon Quartet(CPO Classical Produktion ) / 섹스폰 4중주
③Calefax Reed Quintet(MDG) / 관악 5중주(Bassoon, Oboe, Saxophone, Clarinet, Basset Horn )

④캐나디안 브라스(Sony) : 관악5중주버젼 @

바흐의 역작인 이곡을 연주하고픈 욕구는 여러음악인들로 하여금 구미를 당기게 하는데, 캐나디안 브라스도 이곡에 도전하고 있다. 그들이 편곡연주한 음반중에서 골드베르그변주곡은 매우 훌륭하게 평가 받고 있는것 같다. 그런데 푸가의 예술연주에서는 그완성도가 다소 하회한다고 생각된다. 그이유는 가장 정교하게 표현하여야할 이 유서같은 음악과 금관연주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최고의 관악기 명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거칠고 투박한 악기 자체의 음색은 푸가의 예술에서 느껴지는 뉘앙스와는 다소 거리가 있을 것 같다. 다만 이들의 음악을 풀어가는 방식은 매우진지하고 견실하다고 생각된다. 이런 형태의 푸가의예술도 한번쯤은 들어봄직하다.

⑤리코더 4중주(채널클래식): Amsterdam Loeki Stardust Quartet/1998년 레코딩 @

리코더로 푸가의예술을 연주한다는 것은 나름대로 의미를 지닌다. 관악기 가운데 누구나 어려서부터 접해본적이 있겠지만 그럼에도 가장 생소하게 느껴지는게 이 리코더란 악기라고 생각된다. 다른 관악기와는 달리 그다지 화려하지도 않고 심혼을 뒤흔드는 음색도 아니지만 투명한 음색은 아주 조촐함을 전한다. 글쓴이는 이 리코더에서 느껴지는 청초하고 맑은 느낌이 어떻게 푸가의 예술이란곡과 조우할지 설레임을 갖고 이음반을 접했는데 약간 실망했다. 그이유는 관악기처럼 호흡으로 음가를 유지해야 하는 악기자체의 한계 때문이었다. 유건 관악기라고 할수있는 오르간이 안정된 느낌을 주는것과 너무도 비교된다. 건반악기나 현악기는 호흡 때문에 곤란을 격는일은 없겠지만 호흡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또한 그느낌을 전달하기위해서는 숨결을 잘 조절해야하는 리코더같은 관악기는 이 푸가의예술이란 악곡을 표현하기에는 다소 뭐하다고 보여진다. 오르간처럼 음가를 균질적으로 유지해야 하는 곳에서 리코더는 그렇지 못하기때문이다. 악기지정이 없는 이악곡에 도전한 리코더 연주자들의 고군분투는 칭찬하고 싶지만, 반드시 업적은 노력에 비례하지 않는 것이 또한 사실인 것 같다.

⑥Los Angeles Saxophone Quartet(Protone Records) / 섹스폰 4중주

8.Jozsef Eotvos(Artisjus) - 클래식기타연주(한대를 사용하여 더빙방식으로 녹음)

9.기악합주형태 혹은 오케스트라 버젼

1)괴벨 / 무지카 안티쿠아 쾰른(Archiv) @ !

괴벨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이 음반은 일반적으로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 이음반의 외관상의 특징을 말하자면 음질이 깨끗하고 녹음상태가 최상이라는 점이다. 또한 악기의 음색 특히 쳄발로의 소리가 감미롭기 그지없다. 그런데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글쓴이는 이 음반에 대해서 그다지 높은 점수를 주고 싶지않다. 바흐시대에는 ad libitum(연주자가 원하는 바에 따라 '자유롭게' '마음껏' 표현하라는 의미)이 폭넓게 사용되었고, ex tempore 연주(즉흥 연주)가 유행 했다고 알려져 있다. 따라서 바로크음악의 해석에 있어서 장식음 운용에 대한 많은 연구와 그에 따른 실제의 연주가 있을수 있겠지만 글쓴이는 이런식의 장식음 운용에 대해선 다소 회의적이다. 적정한 장식음의 부가는 곡상을 신선하고 독창적이게 할 여지를 주겠지만 과도한 사용은 정말이지 음악을 듣기 부담(악기만 고악기이지 그것을 통해서 나오는 선율들은 듣기부담스런, 낭만주의음악 이라고 할까) 스럽게한다. 한편으로 적정한 사용이냐 과도한 사용이냐에 대한 경계선을 획정하기도 곤란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글쓴이 개인적 생각으로는 장식음의 운용은 극력 절제하여야 한다고 본다. 이음반을 들어보면 거의 곡전반에 걸쳐서 활용된 적극적인 장식음 운용을 포착할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곡이 이처럼 빈번한 장식음을 허용할까 생각해보면 글쓴이는 무척 의문스럽게 생각한다. 지나친 장식음의 부가는 바흐음악의 숭고성을 잠식시키고 지속적인 감상을 방해하는 암초같은 존재라고 생각된다. 또한 바흐의 역작이라 할 수 있는 이 미완의 대곡은 그의 최말기의 음악답게 음악 혹은 학문적으로 많은 시사점을 제공하는데, 이런 심각하고 진지한 유서같은 음악을 이토록 달콤하고 자극적인 음악으로 운용하는 것이 타당한지는 정말 모를일이다. 이 음반은 곡운용을 좀더 엄정히 운용하였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 그런음반으로 생각한다. 약간 완곡히 말하면 이런류의 음악은 글쓴이에게 잘 맞지 않는 음악(글쓴이의 생각과 달리 이 음반은 일반적으로 애호가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음반이므로 궁극적 호오판단은 감상자 개인이 하여 볼 것을 권함) 인것같다.


2)매리너 / 성 마틴 아카데미(Philips Duo) @ *

매리너경이 지휘한 고음악들은 상당히 호평받고 있는데, 푸가의 예술연주도 여러곳에서 신경쓴 부분이 역력하다. 이음반은 가장 손쉽게 구할 수 있는 연주로 이 장대한 푸가변주곡들을 곡의 특성에 따라 나름대로 현악합주, 현악관악합주 오르간, 쳄발로등 악기의 편제를 달리하여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악기의 다양한 운용은 이곡을 더욱더 진중하고 독실하게 만드는것같다. 악기지정이 없기 때문에 매리너경의 이러한 방식도 충분히 가능한 해석방식일 것이다. 다만 이런식의 연주악기의 다변화를 통한 해석이 푸가의 예술과 반드시 잘 매치되는지는 모르겠다. 더군다나 바흐의 최말기의 작품이란 점을 고려한다면 여느작곡가들의 말기작품들처럼 규모를 최소화시키는 편이 차라리 나을지도 모를것이다. 어찌하였던 매리너경의 연주음반은 여러악기로서의 다양한 연주가능성을 시사해주는 단서를 제공하고 있다는점에서 특징적이다. 아울러 이음반은 낭만적인 정신이 잘 표현된 연주라고 생각되는데, 이는 현대악기의 특유의 장점(고악기와는 각도를 달리한다고봄)에 기인할것이다. 그가 지휘한 이연주는 후배연주자들에게 어떤식으로든 많은 영향을 끼치게 한것으로 보인다. 곡전체가 숭고하게 처리되어 있으며 절제된 연주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독주자로서의 호그우드의 쳄발로연주나 앤드류 데이빗의 오르간 연주도 매우 소박하고 심도가 높게 처리되어있다. 필자 개인적 생각으로는 이곡에 관심을 가지는 이들에게 적극 권하고 싶은 음반이다.

3)조르디 사발 / 헤스페리온ⅩⅩ

4)뮌슁거 / 스튜트가르트 챔버 오케스트라 (Decca) @ *

이음반은 글쓴이가 가장 최근에 들어본 음반으로 애호가들에게 회자되는 음반중에서도 괜찮은 연주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음악을 끌어가는 모습이 매우 진지하고 스케일이 큰 음조를 들려준다. 물밀 듯이 가슴 여미게하는 잔잔한 감흥을 전달하는 연주인 것 같다. 현악기특유의 따스하고 서정적인 선율과 절제된 비브라토가 전곡을 지배하여 투명하고 순수한 느낌을 전달한다. 타건과 동시에 음가가 즉시 떨어지는 건반 악기와는 다른 끈적한 호소력을 주는게 또한 현악기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이런 형태의 시도도 뜻깊은 작업임이 분명하다. 칼 뮌슁거의 지휘 하에 슈투트가르트 쳄버 오케스트라의 연주는 곡 후반부에 배치된 독주연주와 대조와 통일감을 전한다. 18번 19번 트랙의 쳄발로 독주를 맡은 Martin Galing은 부드럽고 운치감을 주는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준다. 듣기를 권하고 싶은 음반이다.


5)젠더 / RSO 베를린 (Koch Schwann)
6)리날도 알레산드리니(OPUS111)
7)The Amsterdam Bach Soloists(Ottavo) - 실내악 혹은 오케스트라
8)Erich Bergel지휘(BMC) - 오케스트라(Cluj Philharmonic Orchestra)
9)Herbert Breuer지휘(Arte Nova) - 오케스트라
10)Laurence Dreyfus 지휘(SIMAX) - 실내악
11)Fretwork지휘(Harmonia Mundi ) - 비올 합주(실내악)
12)Bernard Labadie지휘(Dorian Recordings) - Les Violons Du Roy(실내악)
14)Raymond Leppard - English Chamber Orchestra and Neville Marriner with The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15)Milan Munclinger지휘(Supraphon) - Ars Rediviva Chamber Orchestra
16)Phantasm(SIMAX) - 실내악
17)Max Pommer지휘(Capriccio) - Neues Bachisches Collegium Musicum Leipzig(실내악)
18)Karl Ristenpart지휘(Accord) - Chamber Orchestra of the Saar
19)Janos Rolla(Hungaraton)지휘 - Liszt Ferenc Chamber Orchestra
20)Hermann Scherchen지휘(ACCORD) - Orchestre de la R.T.S.I. (Lugano)
21)Hermann Scherchen지휘(History, International Music Company) - Orchestre de Radio Beromunster
22)Hans Zender(코흐) - 피아노와 오케스트라(Radio-Symphonie - Orchester Berlin)


@표시한 것은 글쓴이가 소장하는 것
! 일반적으로 좋게 평가받는음반
* 표시한 것은 그중에서도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음반임

Ⅴ.맺음말

이글을 구상해서 쓰는데 상당히 개인적으로는 고심을 많이 했다. 푸가의 예술이란 곡자체의 난해성도 한몫 했겠지만, 많은 경우 음반에 대한 개인적인 호오(好惡) 판단이 일반적인 시각과는 너무도 차이가 난다는 점이 사실 글을 쓰는 본인마저도 당혹하게 한다. 폭넓은 곡의 이해를 위해서는 여러사람들의 생각을 들어 보는 것이 이 무한한 곡을 그래도 바흐에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이글은 바흐를 쉽게 듣도록 한 김은호님께 드립니다!

우리모두는 바흐의 아들들이다!


각주----------------------------------------------------------------

1)당송 8대가: 당의 한유(韓愈)와 유종원(柳宗元)과 송대(宋代)의 구양수(歐陽修),3소[소순(蘇洵),소식(蘇軾/1036.12.19∼1101.7.28 ), 소철(蘇轍)], 왕안석(王安石/1021~1086), 증공(曾鞏) 등의 8명을 당송 8대가(唐宋八大家)라 함.

2) 이시는 宋詩選註[(송시선주) 전종서 저 / 이홍진교수 역 / 형설출판사]라는 책 104면~109면에 서 인용한것임.

3)구스타프 레온하르트의 주장 중 핵심적인 몇 가지만 든다면, ① 모든 곡은 두 손으로 연주 가능하며, ② 각 성부는 특정 악기의 색깔을 나타내지 않고 있다. 또, ③ 앙상블 형태로 연주할 경우 음역상 연주 불가능한 부분이 있으며, ④ <2대의 클라비어를 위한 푸가>는 이 곡이 건반을 위한 작품임을 확실히 증명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물론 이 곡이 실수로 <푸가의 기법>에 포함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여러 정황으로 보아 사용되는 건반은 쳄발로일 확률이 가장 높다는 주장이다.(윤정열씨 글 / 구스타프레온하르트 음반 해설지)

4) 책 바흐천상의선율 122면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