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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바흐해석 방향에 대한 단견(短見)하나]

*** 게시판에 올라왔던 BACH2138님의 글입니다. ***


Ⅰ.바흐를 지탱하는 두축(軸)

바로크음악의 최고의 정점을 이룩한 바흐를 보면서 제가 느낀 생각들을 말해보려 합니다. 저는 결코 음악을 전공한 사람은 아닙니다. 바흐를 너무나도 좋아하는 애호가라고 할까? 아니면 바흐 매니아라고 할까? 이글을 올릴까 말까 상당히 많은 고민을 했는데, 용기를 내어서 이렇게 글을 써 봅니다. 비음악학도 이기때문에 이런 글이 나오겠지 하고 그냥 무시해도 좋습니다. 지금까지 바흐를 들으면서 느낀 감상문 정도로 생각하면 될것입니다. 제가 여기에서 기술하며 전개해 나갈 방향는, 굳이 말하면 미학적 측면에서 바라보는 바흐일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분석하여 나아갈 이야기는 바흐의 전영역에 적용될수 있지만, 세속 기악곡 (BWV772 ~끝) 에 가장 잘 들어 맞는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원전연주에서나 현대악기연주에서나 양적인 차이는 있을지언정 저의 논지는 공통적으로 적용되리라 생각합니다. 다만 원전연주는 훨씬 더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곡의 운용이 두드러지는 특색을 지니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바흐를 듣지 않던 때에도 저는" 그의 음악은 숭고하다" 라고 알고있었습니다. 이런 공식에 가까운 명제는 바흐를 듣고 있는지금도 참 적절한 지적 이구나 하고 고개를 끄떡이게 합니다. 서양예술의 근저를 깔고 있는 크리스트교의 힘은 바흐에게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그를 종교음악의 대가로 자리 매김하도록 했습니다. 나아가 그가 만든 수많은 세속음악에서도 그시대의 돈독한 신앙의 힘은 그의 음악의 한축(軸)을 형성하고 있는데, 저는 이축(아래에서는 논의의 편의상 이축을 오른쪽 축으로 하여 글을 전개 하겠음)을 바흐음악이 본원적으로 갖는 "숭고성" 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숭고성이라는 축에서 발산하는 바흐음악의 뉘앙스은 종교적 느낌인 명상성, 경건성 등일것입니다.

또한 바흐음악은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을 지닌다고 봅니다. 즉 "구체화가능성"이라는 나머지 한축(왼쪽 축이라고 논의를 전개하겠음)이 바흐를 떠 바친다고 봅니다. 음악가들이 바흐를 일컬어 거대한 음절이니, 총체적 영혼이니, 바흐엔 아무것도 없다느니 하는 발언의 진상은 아마도 "구체화 가능성" 혹은 "무한한 해석의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한 동일한 맥락의 발언이라고 생각됩니다. 바흐의 음악에는 현상으로서의 인간의 온갖 감정과, 고독, 어두움, 불안, 경악, 역동성 등과 같은 삶의 단면들이 다성음악의 틀속에 멜팅 팟(melting pot) 처럼 녹아 있다고 봅니다. 이러한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감정의 군상과 삶의단면을 담고 있는 바흐 음악은 연주자에게 필연적으로 구체화의 계기를 부여한다고 봅니다.

그리고 연주시에 루바토를 도입한다든지, 혹은 즉흥적인 장식음을 부가하여 곡의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시도도 구체화의 형식적 범주에 넣을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물론 "내면적 감정의 구체화"와 "음악의 형식적 구체화"는 밀접한 관련성을 가질것 입니다. 이는 항목Ⅱ. 에서 이야기해보겠습니다. 바흐음악이 '개방적이다' 혹은 '추상적이다' 라고 하는 말도 이 왼쪽축과 관련성을 가질것입니다. 이러한 구체화 가능성이라는 왼쪽 축에서는 바흐의 세속음악적 성격이 강력히 발산되여 곡을 인간적이게 합니다. 저는 이것을 '구체화된 낭만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른 예술분야 예컨데 영화음악등에 많이 원용되게 하는이유도 이러한 바흐음악의 무한한 해석의 가능성에 기인한다고 생각합니다.

바흐를 지탱하는 위의 두축인 "숭고성"이라는 오른쪽축과 "구체화가능성"이라는 왼쪽축은 동전의 앞뒤면 처럼 배치되어 있을수도 있으며, 야누스의 얼굴처럼 동시에 존재할수도 있을것이며, 서로 혼재하여 있어서 그 추출 자체를 곤란하게 할 정도로 얽혀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오른쪽축이 잘 발현된다고 왼쪽축이 반드시 거기에 정비례한다고 볼수도 없다고 보입니다. 반대도 또한 그러하다고 봅니다. 이런 양축을 잣대로 연주자들의 음악을 분석해보면 오른쪽축의 관점을 강조한 연주가 있기도 하고 왼쪽축의 관점을 강조한 연주도 있는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입론한 이러한 분석적 접근은 당연히 절대적이지는 않으며 제 주관에 근거하여 구성한 바흐음악의 해석모형에 불과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Ⅱ.숭고함이냐 구체화이냐?

위에서 적시한 제가 생각하는 바흐음악의 두축을 상정하여 보면 지금까지 연주자들이 어떤방식으로 연주하였는지를 판단할수있다고 봅니다. 숭고성이라는 오른쪽축을 강조한 연주는 이제까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바흐해석의 주춧돌 역할을 해 왔다고 봅니다. 여러음반들을 살펴보면 그것이 독주곡이든 듀엣곡이든 협주곡이든 숭고성이 곡깊숙히 녹아있음을 볼수 있을겁니다. 골드베르그변주곡을 예로들면 "빌헬름 캠프"와 "헬무트 발햐"의 해석을 여기에 집어 넣을수 있을겁니다. 특히 캠프의 피아노 연주는 정통피아니즘이 어떻게 바흐에 실현될수있는지를 단적으로 말할것입니다. 도저히 레가토를 견지하고서는 바흐의 다성음악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할것 같은데, 그는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부드럽고 따스한 정갈미를 앞세워 훌륭하게 표현합니다. 물론 이들의 음악이 왼쪽축을 전혀 도외시 했다는 것은 아니고 그해석의 중심이 오른쪽축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의미일것입니다.

대다수의 연주가 숭고성이라는 오른쪽축을 강조했는데도, 희귀하지만 "구체화 가능성"이라는왼쪽측면을 강조한 연주가 존재합니다. 저는 "글렌굴드의 바흐 레코딩"과 "요요마의 바흐로부터의 영감"을 여기의 범주에 넣고 싶습니다. 굴드를 거론하는것 자체가 식상한 느낌이 들기도 하지만, 그의 바흐해석은 실제로 현재 바흐연주의 나아갈 바를 암시하는 이정표역할을 한다고 봅니다. 바흐음악의 구체화가 어떤것인가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니깐요. 그는 바흐연주를 통해 "고독"을 구체화 시키고 있습니다. 바흐에 녹아있는 그많은 감정의 군상중에서 고독을 추출하여 그것을 전면에 부각시켜 시종 일관되게 밀어부치는 그의 해석방식은 기존의 바흐를 바라보는 각도를 돌리게 한 '코페르니쿠스적인 발상의 전환'이라고 봅니다. 더군다나 정통피아니즘을 거부하고 쳄발로의 음색을 지향하는 연주를 통한 구체화라는 점에서 음악적으로 많은 논란꺼리를 지금껏 제공하여 왔으며 앞으로도 그러할것입니다. 그의 바흐연주가 '음악의 해석' 이냐 아니면 '해석을 넘어선 창조' 냐하는 식의 논란은 바흐음악을 거시적으로 바라보면 쓸모없는 논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또한 요요마의 "바흐로부터의 영감"이라는 음반을 보면 음악적 성취가 일정한 시간의 간극속에서 이렇게 일취월장 할수도 있는가? 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데, 음악의구체화를 다른 예술장르를 통해서 실현하는것을 보면 역시 <바흐는 규정되었다기보다는 해석될뿐이라는 제믿음>에 날개를 달게 하는것 같습니다. 모음곡 제3번의 너울너울 춤추는 무용수들의 몸짓과 절묘하게 매치된 이런 무반주는 어느누구도 생각하지못한 아이디어 일것입니다. 바흐음악을 잘 해석하려면 진정에서 우러나온 삶의 관조와 고민이 있어야 하며 다른이들 예컨데 미술가, 문학가, 교수, 법조인등등의 애호가들과 많은 교류가 필요하다고봅니다. 그것은 바흐음악의 폭이 워낙 넓어서 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나이가 든 노연주자의 연주가 바흐의 명연주로 기억되는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그러한 인생의 관조와 의사소통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구체화 가능성에 있어서 약간 다른측면일수도 있지만 "형식적 구체화"와의 관계가 문제입니다. 연주자 입장에서는 연주시에 루바토를 도입한다든지, 혹은 즉흥적인 장식음을 부가하여 곡의 분위기를 반전하는 식의 시도는 큰매력을 주는것 같습니다. 최근의 젊은 연주자들에서 들리는 공통된 현상이라고 할수 있을겁니다. 이런 형식적구체화는 실제로 음악내용의 구체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어서 따로 떼어서 논의할 성질의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입니다. 그런데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연주자의 전달의도와 감상자 사이에 괴리감이 생겨 그 전달하려는바가 전달 안될때>입니다. 연주자는 곡을 형식적으로 구체화를 하여 인간적이고 다감한 모습을 부여함으로서 자신의 연주를 기존의것과 다르게 특화 하려하지만 그게 반드시 성공적이지는 않다고 봅니다. 연주자의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뿐아니라 음악을 천박하게 만들어 바흐의 숭고성이라는 오른쪽축을 건드려 형평성을 파괴한다는것입니다. 굴렌굴드가 형식적 구체화를 견지했다고 볼수 있으나, 그는 내면적 구체화를 중심에 두고 철저하게 곡상을 반음악적이라고 할만큼 뚜벅뚜벅하게 전개 시켰기 때문에 오른쪽축을 그렇게 건드리지 않고 왼쪽축을 잘 실현할수 있었다고 봅니다. 앞으로 연주자들의 내면적 접근방식을 기대해 봅니다.

한편 숭고성을 강조할것이냐 아니면 구체화가능성을 강조할것이냐 는 기본적으로는 연주자의 가치지향에 달려 있을것입니다. 숭고성을 강조한 음악이 20세기의 주축을 이루었다면, 21세기의 해석방향은 구체화 가능성을 견지한 음악이 될수도 있을것 입니다. 최근의 레코딩을 보면 구체화 가능성을 모토로 한것 아니냐는 착각을 가지게 할정도로 인간적인 바흐를 시도하는 경향을 느끼곤 합니다. 넓게보면 원전연주의 유행도 그러한 예술적 조류일수도 있을것입니다. 그런데 구체화가능성을 부각시키는 연주를 함에 있어서는 기교상에 있어서 대단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형식을 위한 형식이 되지않고 내용을 위한 형식이 되기위해서는 정말 구체화에 대해서 가슴깊히 고민해야 하고 좀더 외관상 엄정해질 필요가 있을것 같습니다. 제가 샤콘느를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곡을 해석한 수많은 연주중에서 슬픔을 표현한 연주로는 저는 "요한나 마르치"의 연주를 꼽고 싶은데, 다른 측면에서의 슬픔을 표현하지는 못할까요? 우리민족에게 가장 아픈 일중에 하나인 저 위안부할머니의 가슴아픈 심경을 샤콘느를 빌어 표현할수도 있을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분들의 아픔을 가슴깊히 공감하고 고민해본다면 정말 구체화된 샤콘느가 태어나지 않을까요. 사실 이런 샤콘느는 정경화나 장영주같은 음악인들이 앵콜곡으로 외국에서 연주해줘야 되는건데 하는 아쉬움이 너무나 큽니다.


Ⅲ.피아노냐 쳄발로냐 ?

바흐의 건반악기의 연주와 관련하여 쳄발로등의 고악기와 현대 피아노연주간에는 이념상,기능상 및 해석상 여러각도에서의 대립 이 존재하는것 같습니다.사실 이문제는 논의를 확대시키면 원전연주냐 현대악기를 통한 연주냐의 문제에 귀결 하는 문제이기도 할것입니다. 먼저 이념적으로는 원전연주인 쳄발로야 말로 바로크의 진정한 분위기와 성격을 표출시킬수있다는 논지와, 이시대의 보편적인 악기인 피아노연주도 그나름의 시대적의미를 가지며 음악을 살아있는 실체의것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이 입론될수있을것 같습니다.

두번째 기능적으로도 원전연주야 말로 다성음악 본연의 모습을 부각시킬수 있으며 피아노로는 아무래도 역부족이라는 논지와, 피아노로도 훌륭히 바흐를 해석할수있으며 무엇보다도 구체화에 관한한 쳄발로는 뒤따르지 못한다는 주장이 입론 될수있다고 봅니다

세번째 해석상으로도 약간 차이를 드러내 보이는데, 피아노라는 악기는 인간 감정을 표출시키는 낭만적 악기라는 점에서 쳄발로 보다는 전체적으로 주관적 측면을 강조할수 있으며, 쳄발로는 바흐당시의 좀더 객관적 느낌을 더 잘 표현할수도 있을것입니다. 소박하고 때로는 화려한 이시기의 느낌을 해석해 낼수 있다는것은 쳄발로의 강점인것 같습니다.

제 짧은 생각으로는 각악기가 가지는 장단점이 있으며 서로에게 상호 영향을 주는 관계에 있다고봅니다. 먼저 쳄발로연주는 다성음악의 풍성함과 바로크의 화려하고 소박한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출하는 장점을 가지는 반면, 악기자체가 가지는 시대본질적 한계인 감정이입의 곤란성이 지적될수있으며 자칫 음악적 도피라는 비판과 무미건조함이라는 비난을 받을 여지도 있을수있다고 생각됩니다. 다음 피아노 연주는 내용의 구체화라는 측면에서는 쳄발로를 능가하는 장점이 있으나 음악이 자칫하면 공허하고 몽환적이거나 균형감을 상실할 위험을 가지는데, 피아노 연주시에는 정말 남다른 조심스런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제는 어느악기라도 서로의 존재를 긍정해야 하는 시대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듭니다. 쳄발로도 피아노를 무시할수도 없고, 피아노도 쳄발로를 무시할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실제로 연주에서 그 효력을 발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쳄발로는 피아노의 인간적이고 부드러움을 동경해야 하고, 피아노는 쳄발로의 직설적이고 풍성함을 배워야 한다는것 일겁니다. 따라서 피아노 연주와 쳄발로 연주 모두가 동시에 중시되어야 보다 가까이 바흐를 조명하지 않을까 합니다. 요컨데, 무한한 해석가능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양 악기 모두의 동시적인 운용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현재의 세계적인 풍조는 원전연주가 유행이지만 피아노 연주도 그에 발맞춰 행해져야 할것입니다. 피아니스트들의 분발을 기대해 봅니다. 쳄발로연주도 앞으로 훨씬 내실을 갖추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Ⅳ.연주시 혹은 레코딩시의 악기의 음색에 대하여

바흐레코딩을 들어보면, 악기음색을 있는그대로 담은 녹음도 있고 몽환적인 음색을 담은 것도 있는데, 바흐음악에서는 몽환적인 음색은 반드시 피해야 한다고 봅니다. 연주자가 이런 음색을 지향하고 연주하는것은 말할것도없고 음색을 모호하게 하는 녹음방식도 피하는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어떤음악가들은 무슨의도인지는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교회당같은 곳에서 녹음 하기 까지 합니다. 아마도 곡에 숭고성을 부여하기위한 고려인것으로 보이는데, 참 답답하게 느껴집니다. 곡에 숭고성을 부여하기위해서는 곡을 엄정히 하려는 자기 내면화가 중요하지 그런식의 하드웨어를 내세우는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할것이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가뜩이나 추상적인 바흐를 더욱 더 혼동속에 내몬다고 봅니다. 이것은 마치 도(道)를 닦겠다고 산에 들어가는 행태와 다를바없다고 보여지는데, 삶의 도(道)는 그런식의 도피처에 가탁하지 않고 현실의 삶을 영위하는 가운데 얻어 진다는 점을 상기해보면 그런태도가 오류 라는것을 알수 있을것입니다. 수십년을 소급하는 열악한 음질의 음반이나 미스터치가 많은 연주보다도 더욱더 감상을 방해하는 것은 음색의 모호함이라고 보여지는데, 정말! 모호한 음색만큼은 피해야 할것입니다. 최근 90년대이후 레코딩들에서 이러한 오류들이 자주 발견되곤 하는데, 좀더 존재하는 대로의 음색을 전달하도록 노력해야 할것입니다.

Ⅴ.제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해석의 패러다임

저는 <바흐는 낭만성과 애증(愛憎)의 관계>에 있다고 봅니다. 바흐의 음악은 낭만파 음악과는 달리 인간의 삶과 감정을 결코 직설적으로 표현하는법은 없고 총체적인 아웃라인만을 제시하는 고도로 객관화된 음악일것입니다. 따라서 악보 그자체가 가지는 의미는 어떤이의 말대로 무(無)일수도 있을겁니다. 그렇지만 일단 연주자의 손을 거치면서 생명력을 갖게되어서 보다 주관적인 음악으로 새단장할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실현된 바흐는 구체화된 낭만성을 가진다고 봅니다. 이점에서 바흐는 낭만성과 공조의관계(愛)에 있다고 봅니다. 다음, 표현에 있어서 모호한음색, 과도한 비브라토, 즉흥적인 장식음을 사용하여서는 바흐연주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봅니다. 바흐음악은 이점에서는 낭만성과 배척의 관계(憎)에 있다고 보여집니다.

따라서 저는 바흐연주에 있어서 "음악의 표현은 객관적으로하고 그속에 담길내용은 주관적으로하라" 라는 해석의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숭고성이라는 오른쪽축에 중점을 두고 음악을 전개하든지, 구체화가능성이라는 왼쪽축을 강조한 연주를 하든지 이러한 패러다임이 공통적으로 적용될수 있을것입니다. 다만 숭고성과 표현의 엄정성은 거의 같이 붙어 다니기 때문에 숭고성을 강조한 연주에서는 제가 세운 명제가 별로 효력을 발휘할것 같지 않지만, 구체화가능성을 부각시키려는 연주에있어서는 제가 제시하는 해석의 패러다임이 강력한 효력을 발할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21세기의 해석방향이 어떤식으로든지 왼쪽축을 중시하는 연주의 흐름인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저의 주장이 공허한 메아리는 되지 않으리라 믿어 보고 싶습니다.

Ⅵ.맺음말

저는 비음악학도이기 때문에 음악에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여러음반을 반복해서 듣다가 제가 느낀것을 거의 직관에 의거하여 글로 표현한 것일뿐입니다. 위에서 두서 없이 이야기한 글은 제가 나름대로 느끼고 정립한 바흐 감상의 틀에 불과하다는 것을 재삼 말씀드립니다.

ㅡ이상ㅡ